2016. 5. 2.
바다에 기대 사는 사람들
영화 '가을로' 속 대사다. 도시인의 눈으로 어촌마을의 생활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저 영화 속 장면 처럼 차를 타고 스쳐지나며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딱 그정도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름다운 동해를 끼고 앉은 마을은 영화 속 대사처럼 이름을 한번씩 불러줘야할 것 같을 만큼 아름답다.
부산 오륙도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와 나란히 길이 났다. 동해를 지키던 철책을 걷고 군인들이 투박한 군홧발로 밟던 길은 이제 여행자들의 몫이 되었다. 이름도 예쁜다. '해파랑길'이란 이름은 곱씹을 수록 참 잘 지은 이름이다 싶다. '바다와 파도의 길'이란 이름만큼 이 길을 잘 설명해줄 설명이 또 어디 있을까? 한편 '해'는 바다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지만 하늘에 떠 있는 '해'라도 해도 될 듯 하다. 바다를 따라 나란히 걷는 길은 아름다운 바다 풍경도 함께하지만 내리쬐는 해도 함께하는 길이니 말이다.
지난 목요일(4월 28일)부터 어제(5월 1일)까지 포항에서 출발해서 평해 월송정까지 바다를 따라 걸었다. 차를 타고 지나는 길에는 그저 스쳐지나는 풍경이 걷는 이에게는 좀 더 오랫동안 머문다. 그만큼 이런 저런 생각도 함께 지나간다. 도시인의 눈으로 보는 바닷가 마을의 생활은 일상에서 보는 것과는 영 다른 색다른 풍경 정도일 것이다. 며칠 걷는다고 내가 동해안 어느 마을에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달리 보이는 것도 있었다.
경북의 동해안은 해안과 나란하게 달리는 태백산맥에서 뻗어나온 산이 바닷에 딱 붙어 서있다. 강릉에서 북쪽이 해안이 긴 백사장이 어어진 모래 해안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바다를 마주하고 앉은 마을은 바로 뒤에 산을 두고 있다. 작은 어항을 끼고 있는 곳도 있고, 그렇지 못한 곳도 있다. 포항 쪽에는 그래도 마을 뒤로 농사지을 땅이 있었는데, 영덕 쪽은 농사지을 땅이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바다에 의지해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은 어항이라도 끼고 있는 마을은 어김없이 해신당이 있다. 얼마전에는 올해 풍어제도 지냈나 보다.
파도가 들이닥치는 바위 위에서 기다란 장대를 들고 미역을 건지는 이들과 그 미역을 정성스럽게 네모나게 널어 말리는 이들의 모습은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욕심을 낸다고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미역을 건질 수는 없을테지만 그래도 미역은 바다가 주는 선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격에 따라 잘 말린 미역은 스무 개씩 묶어 13~15만원 정도 받는다고 한다.
만선의 꿈도 좋고, 미역 말려 팔아 번 돈이 아무리 쏠쏠해도 바다를 마주하고 사는 것은 무서운 일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을마다 지진해일 대피로를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있고, 파도가 센 날은 파도가 방파제를 넘는 일이 없으란 법도 없다. 성난 파도도 멀리서 바라보면 그림 같을 수 있겠지만, 바다를 매일 마주하고 사는 사람들 눈에도 그렇게 보일까?
2016. 4. 23.
재개발의 그늘 - 골목은 없다
독일로 떠나기 얼마 전, 어릴 적 살던 동네에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마침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나가는 길에 조금 일찍 나서서 옛날 살던 골목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어린 시절은 태권도장을 다닐 즈음이니까 대여섯 살 정도까지다. 그 이전 기억은 없다. 요즘은 전 국민이 사진작가고 동영상 촬영감독인 시대라 아이들 어린 시절 기록을 남기는 게 뭐 그리 어려울까 만은 내 어린 시절은 그런 시절이 아니었다. 사라진 내 기억을 복구해줄 사진 한 장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2016. 4. 18.
2016. 4. 9.
무작정 나서는 답사 - 동래읍성 그 세번째
2016. 4. 2.
무작정 나서는 답사 2 - 동래읍성 그 두번째
동래읍성 답사 지도
지난 일요일에 이어 두번째 답사다. 지난 답사가 동래읍성을 따라 걷는 것이었다면 두번째 답사는 동래읍성 내 주요 시설을 찾아보았다. 동래부 동헌이 복원되어 있고(물론 옛 모습 그대로는 아니다), 장관청, 송공단 정도가 남아있을 뿐 나머지는 작은 표지석만 있을 뿐 모두 사라진 것들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숨은 그림 찾기 하듯 표지석을 찾아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일일 수도 있겠다.
2016. 3. 27.
무작정 나서는 답사 1 - 동래읍성
동래읍성 답사 지도
부산에서만 30년도 더 살았는데 아직도 부산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없는 지식이라도 쥐어짜서 뭐라도 결과물을 하나씩 만들어보려 한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말을 이용해서 부산 곳곳을 답사하고 간단하게 정리해볼까 한다. 오늘은 그 첫번재로 동래읍성이다.
동래읍성을 첫번째 답사 장소로 정한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라도 해도 크게 틀린 건 없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내가 살던 곳이 바로 오늘 답사한 동래읍성 근처였다. 지금은 재개발 광풍에 옛 골목은 사라져버렸지만 그래도 내 기억 속 길을 다시 따라가보고 싶었다.
2016. 3. 12.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 오베라는 남자(프레드릭 배크만, 2015)
'사람들은 오베가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다.'
이 세 문장이 소설 속 오베라는 남자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말이 아닐까? 세상을 흑과 백으로 본다는 것은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나눈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베는 원칙을 지키며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남이 한 일을 일러바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이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그 원칙을 끝까지 지켰다. 이웃집에 든 도둑의 칼에 찔려 병원에 실려가면서도 주거지에 차를 몰로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규칙을 강조하는 사람이 오베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오베는 고집불통에 막무가내로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는 말 속에는 그를 향한 불편한 시선이 묻어있다. 그런 오베지만 그의 아내 소냐에 대한 마음은 흑백이 아니라 아름다운 색깔을 가졌다. 오베가 소냐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아마도 오베에게 소냐는 세상 모든 아름다운 색,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오베가 그녀를 따라 가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그의 계획은 번번히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한편 재미있으면서도, 오베라는 남자가 남들이 보통 생각하는 그런 고집불통 영감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만약 내 주변에 오베 같은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사람들이 오베를 불편해 하는 건 아마도 그의 원칙을 고수하고 타협하지 않는 성품때문이리라. 보통 사람들은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것을 좋은 일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 소신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은 참기 어려워한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원리와 원칙을 지키자고 하는 사람을 두고 융통성이 없다고 말하곤 한다. 특히 그 불편함을 참아야 하는 사람이 나라면 그 비난은 더욱 거세진다. 재미있는 일이다. 내가 하면 로멘스요, 남이 하면 불륜인 건가?
소신과 원칙을 지키며, 사회에서 정한 규칙을 잘 지키며 사는 것은 말로는 쉬울지 몰라도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닌 듯 하다. 밤 늦은 시간, 거리에 차는 없고 건널목은 빨간불, 보는 이도 없다. 그래도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렸다 건널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2016. 3. 9.
엄마 생각
도서관에서 내가 좋아하는 자리는 벽을 등지고 앉는 자리다. 지금 내가 앉은 자리가 딱 그렇다.
내가 매일 출근하는 모대학교 캠퍼스의 도서관 열람실에는 큰 액자가 걸려있다. 두 개의 큰 일반 열람실에 각각 두 개씩이니 모두 네 개다. 모두 넉 자의 한자를 가로로 적은 것인데, 배움이 모자라 아는 글자도 있고 모르는 글자도 있다. 당연히 뜻은 모른다. 그래도 국립대학교의 도서관에 걸릴 정도면 꾀나 유명한 이가 쓴 글씨일텐데 아쉽게도 이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이들 중에서 그 높은 뜻을 알아줄 이는 없는 듯 하다. 아니, 뜻은 고사하고 액자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내 머리 위에 걸려있는 액자는 그렇게 무관심 속에서도 잘도 그 긴 시간을 버텨왔을테다. 멋진 글씨를 표구해서 잘 걸어놓았는데,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씨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던 비닐필름이 떨어져 너덜거리고 있었다. 상태로 봐서는 꾀나 오래 된 듯 한데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도서관 열람실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는 행색이 거지 꼴을 한 이몽룡 같은 액자를 오늘에서야 발견하신 모양이다. 그길로 도서관 사무실에 알리셨고, 이내 한 남자 직원이 왔다. 떨어진 비닐을 좀 뜯는가 싶더니 사진을 몇 장 찍고는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남자는 아주머니께 비닐만 잘 때라고 아주머니께 지시를 하고는 사라졌다.
거 좀 떼주고 가면 좋았을 것을, 아주머니는 닿지도 않는 손을 연신 뻗어보지난 어림도 없다. 그 일이 자기 일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좀 해주고 가지. 그 남자가 야속했다. 결국 나는 보던 책을 덮고 일어나 아주머니를 도와 비닐을 떼어냈다.
시내 어느 건물 청소를 하시는 엄마 생각이 났다. 누가 청소한다고 무시하진 않는지, 거기는 자기 일 아니라고 야속하게 돌아서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닌지......
2016. 3. 1.
책만 보는 바보(안소영 지음, 강남미 그림; 진경문고; 2005) - 조선판 흙수저의 씁쓸함에 대하여
'책만 보는 바보'
조선 정조 대의 학자이자 문인 이덕무는 스스로 '책만 보는 바보(看書痴)'라 했단다. 일년을 가도 책 한 권 안보는 사람이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는 가당치 않은 별명이다. 하는 말이나 행동이 어눌한 이나, 한 가지 일에 빠져 다른 건 생각도 못하는 이를 사람들은 '바보'라 한다. 이덕무가 스스로 바보라 한 것은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책만 보는 바보는 정말 책이 좋아 그리했을 수도 있고,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책 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매일 책에 파묻혀 사는 백면서생으로 보였을 지 모르지만, 반상의 구별이 엄격한 시대에 적자가 아닌 서자로서 겪는 설움이 묻어나는 듯 해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저려왔다.
책만 보는 바보 곁에는 그의 처지를 잘 알아주는 벗들이 있었고, 힘겹게 젊은 날의 아픔을 견딜 수 있게 도와준 스승도 있었다. 당대의 이름 난 학자였던 홍대용과 박지원은 이덕무의 벗이었던 유득공, 박제가, 백동수, 이서구 등의 스승이었다. 홍대용과 박지원은 이름난 양반가 출신이었지만 스스로 벼슬길에는 큰 뜻이 없었던 이들이었다면, 이서구를 제외한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백동수는 모두 서자 출신이었다. 그들이 모두 정조대에 활약했던 이들이니 지금으로부터 250여년 전인 18세기 후반은 그들이 모두 피끓는 청춘이었을 때다. 250여년 2015년을 지나 2016년을 버텨내고 있는 고단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덕무와 유득공, 박제가, 백동수가 너무나도 많아 보인다. 물론 나라고 예외일 순 없다.
당대 이름난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홍대용, 박지원과 함께 시대를 고민했던 이덕무와 그의 친구들은 젊은 시절 서자란 출신의 한계에 아파했다. 물론 나중에는 정조라는 훌륭한 임금이 그들을 가까이 두고 쓰긴 했지만 그들의 포부와 능력에 비하면 아쉬운 자리였다. 2015년을 넘어 2016년을 관통할 단어를 꼽아보자면 여럿 있겠지만, '흙수저'도 빠지지 않을 것 같다. 누구는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말을 쓰다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서로는 나누게 될테니 그런 말은 쓰지 말자는 이도 있다. 찬성한다. 하지만 이 시대를 관통하는 말이란 점은 씁쓸하지만 부정할 수 없다.
시계를 좀 더 과거로 돌려 통일신라 말기 최치원를 이덕무와 그 친구들과 견주어 보는 건 어떨까? 어린 나이에 당으로 건너가 과거에 장원급제할 만큼 최치원이었지만 신라에서는 그저 많이 똑똑한 6두품이 아니었을까? 물론 최치원이 전국을 누비며 자신의 발자취를 참 많이도 남겨놓아 후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은 똑똑히 기억을 할지 모르지만, 그런다고 6두품 출신 꼬리표가 떨어지는 건 아니니 이 또한 씁쓸하다. 이덕무가 스스로를 '책만 보는 바보'라 칭하고 책 속에 묻혀 살았다면, 최치원은 전국을 떠돌며 시를 썼던 건 아니었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심각하게 얘기하면 덜컥 겁이 난다. 하지만 이덕무에서 2016년을 살고 있는 수 많은 이덕무들과 최치원을 생각해보면 역사는 묘하게 돌고 도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라의 6두품과 조선의 서얼,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흙수저는 공통점이 있다. 내가 가지려고 애써 얻은 꼬리표가 아니란 점이다. 그저 내 아버지가 6두품이었고, 내 어머니가 양반이 아니었건, 아버지 또한 서얼이었기 때문에, 내 부모가 열심히 살았지만 나에게 물려줄 재산이 얼마 없을 뿐이다. 또 내가 원한 것도 아닌 꼬리표지만 6두품과 서얼이란 꼬리표는 때어버리는 것이 불가능했고, 흙수저란 꼬리표는 때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하진 않지만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최치원이 세상이 버린 게 900년이었고, 신라는 935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덕무와 그의 친구들은 1800년을 전후로 하여 세상을 버렸고, 한 세기가 지날 즈음 조선은 이미 국운이 저물어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땅을 '헬조선'이라 이르고, 스스로 지옥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희망이 없는 시대에 미래가 있을까? 답은 최치원과 이덕무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최치원과 이덕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였다. 흙수저 또한 마찬가지라 본다. 못살겠다 아무리 외쳐본들 저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들리지도 않는가 보다. 눈을 떠야 보이고, 귀를 열어야 들린다. 눈을 뜨고 현실을 좀 보라고, 귀를 열고 외침을 들으라고 끝없이 외쳐야겠지만, 쉽진 않아보인다. 그래도 나는 내 방 구석에서라도 외쳐볼란다. 2016년 97주년 3.1절에 2016년을 살아가는 이덕무가 씀.
2016. 2. 23.
습관이 오래면 천성이 된다
동지사 사신이 되어 북경에 들어갔던 자가 남방의 오(吳) 땅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오 땅의 사람이 말하길, "우리 고장에 머리를 깎는 가게가 있는데 좋은 세상의 즐거운 일이라는 뜻의 '성세낙사(盛世樂事)'라는 간판을 붙여놓았소"라고 하기에, 서로 쳐다보며 한바탕 웃다가 곧이어 눈물이 핑 돌더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서글퍼 말했다. "습관이 오래되면 천성이 되는 법이다. 세속에서 이미 습관이 되고 말았으니 어찌 변화시키겠는가? 우리나라 부인네의 의복이 자못 이 일과 닮았다. 예 제도에서는 부인들 옷에도 띠가 있었으며 모두 소매가 넓고 치마가 길었다. 고려 말에 으르러 여러 임금들이 원나라 공주에게 장가들면서 궁중의 머리 모양과 의복이 모두 몽골 오랑캐 제도가 되었다. 그때 사대부들은 다투어 궁중의 양식을 사모하여 마침내 풍속이 되고 말았다. 삼사백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제도는 변하지 않고 있다. 저고리 길이는 겨우 어깨를 덮고 소매는 동여맨 듯 좁아 경망스럽고 꼴사나운 모양이 정말로 한심스럽다. 여러 고을 기생들의 옷은 도리어 우아한 옛 제도를 보존하여 비녀를 꽂아 쪽을 찌고 원삼에 선을 둘렀다. 지금 그 넓은 소매가 너울거리고 긴 여가 치렁거리는 것을 보면 한결 기분이 좋다. 지금에 비록 예법을 아는 집안이 있어 그 경망스런 습속을 고쳐 옛 제도를 회복하고자 하더라도, 세속의 습관이 오래되어 넓은 소매와 긴 띠를 기생의 옷차림과 똑같다고 여겨 그 옷을 찢어버리며 자기 남편을 나무라지 않을 부인네가 있겠는가?
이홍재 군은 약관 나이부터 내게 배웠다. 커서는 중국어를 익혔으니 그의 집안이 대대로 역관인 까닭이다. 나는 그에게 더 이상 문학을 권하지 않았다. 이군은 중국어를 익히고 나서 관복을 갖추고 사역원에서 벼슬살이를 했다. 나 역시 속으로 이 군이 전에 글을 읽을 때는 자못 총명하여 문장의 도를 알았지만 지금은 거의 다 잊어버려 까먹었을 거라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하루는 이 군이 자기가 쓴 글이라고 하며 제목을 '자소집(自笑集)'이라 하고는 내게 보여주었다. 논(論), 변(辨), 서(序), 기(記), 서(書), 설(說) 등 백여 편인데 모두 해박하고 논리 정연하여 한 작가의 경지를 이루었다.
나는 처음에 의아해서 물었다.
"자기 본업을 버리고 이런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군이 죄송해하며 대답했다.
"이것이 바로 본업이고 과연 쓸데가 있습니다. 대개 사대교린의 외교 관계에서는 글 잘 쓰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고 옛 고사에 익숙한 것보다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까닭에 사역원의 관리들이 밤낮으로 익히는 것은 모두 고전의 문장입니다. 제목을 주고 재주를 시험하는 것도 다 여기에서 취합니다."
나는 이에 정색을 하고 탄식했다.
"사대부들은 태어나 어려서는 독서할 줄 알지만, 자라서는 과거 문체를 배우고 기교를 꾸미는 변려체 문장이나 익힌다네. 과거에 합격하고 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매달리지. 그러니 어찌 다시 이른바 고전의 문장이 있다는 것을 알겠는가?"
역관이란 직업은 사대부들이 얕잡아 보는 바다. 내가 염려되는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책을 저술하고 이론을 세워가는 참된 일을 도리어 아전이나 서리의 말단 기예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연극 마당의 검은 모자나 고을 기생의 긴 치마처럼 되지 않을 것이 거의 없으리라. 나는 이런 점이 걱정되는 까닭에, 이 문집에 대해 특별히 쓰고 나서 다음의 서문을 쓴다.
"아아! 읽어버린 예법은 시골에서 찾아야 한다. 중국의 옛 제도를 보려면 마땅히 연극배우에게서 찾아야 하고, 부인네 옷의 우아함을 찾고자 한다면 마땅히 고을 기생에게서 살펴야 할 것이다. 문장의 성대함을 알고자 할진대, 미천한 관리인 역관에게 부끄럽다."
<자소집서(自笑集序)>(연암집(燕巖集), 박지원, 박수밀 역, 지식을만드는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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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씨 연습삼아 필사하고 있는 박지원의 연암집 중에서 요즘 세상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글이 있어 소개한다.
사대부들은 어려서 독서를 했지만 결국 과거를 위한 변려체 문장이나 익히고 고문을 멀리한다고 연암은 탄식한다. 200여 년 전의 글이 다시 살아난 것인가? 변려체 문장 익히는데 열을 올리는 조선의 사대부나, 학교시험, 수능시험, 토익시험, 공무원시험 등등 온갖 시험 공부에만 목을 매고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나 크게 다를 게 무엇인가. 나라고 다를 게 있겠냐 만은. 안타깝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 있다보면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저마다 공부를 하고 있지만 참다운 공부를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서는 누구는 토익시험, 누구는 경찰공무원 시험, 누구는 행정직 공무원, 또 누구는 무슨 자격증, 그 와중에 나는 임용시험. 학기 중이라면 과제하는 학생들이라도 보이련만 봄을 향해 가고있는 대학 도서관의 군상은 수험생이다.
연암이 꼬집은 변려체 문장이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나 알겠는 것은 결국 시험이 끝나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이땅의 대학생, 취업준비생 중에 토익이라는 놈에게서 자유로운 이가 몇이나 될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도 영어로 자기 생각을 막힘없이 말할 수 있는 이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오죽하면 외국인이 영어로 뭐 하나 물어보면 땀을 비오듯 흘리는 수준을 넘어 물총 쏘듯 흘리는 TV광고를 보고 있노라면 씁쓸할 따름이다. 다른 시험공부라고 별반 다를 건 없다. 물론 어떤 지식이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살다보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지만, 선발을 위한 시험은 사람을 걸러내는 역할을 할지는 몰라도, 그 시험공부라는 것이 시험이 끝나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는 점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있다.
시험이 가진 한계이니 어쩔 수 없다 말하는 이도 있을 게다. 그래도 나는 나중에 써먹을 수 있게 뭐라도 하나 고이고이 접어두고 싶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지금 시간이 조금은 생산적이고, 나의 발전을 위한 것이길 바란다.
2016. 2. 15.
지형학 공부 - 빙하의 이동
주제는 '빙하의 이동'이다. 빙하의 이동은 크게 소성적 유동(plastic flow ice)와 활동성 운동(basal slip)으로 나눌 수 있다. 지형학(권혁재)와 맥나티트의 자연지리학을 봐서는 두 가지 이동 형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었다. 참고한 자료는 다음 링크다.
Deformation and sliding
소성적 유동은 압력에 의해 빙하 내부가 냉동실의 얼음과 같은 형태가 아니라 움직일 수 있는 형태로 변형된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걸쭉한 반죽이 흘러가는 것과 비슷한 형태라고 생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걸로 생각한다. 빙하가 소성적 유동만을 한다고 가정한다면 빙하의 아랫부분은 바닥과의 마찰로 이동이 없거나 아주 느린 상태가 된다. 그에 반해 위로 갈수록 마찰력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동 속도가 빠르다.
활동성 운동은 압력에 의해 빙하 바닥이 녹아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며 경사면을 따라 미끄러지는 형태이다. 활동성 운동만 한다고 가정한다면 빙하의 형태는 변하지 않고 경사면을 따라 덩어리 형태로 미끄러지게 될 것이다.
빙하의 이동 형태를 소성적 유동과 활동성 운동으로 구분하였지만 빙하의 실제 이동 형태는 소성적 유동과 활동성 운동이 함께 이뤄지는 것 같다. 다만 온난빙하의 경우 바닥면에서 활동성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이동 속도가 빠를 것이고, 한랭빙하의 경우 활동성 운동 보다는 소성적 유동이 우세한 이동이 이루어지며 상대적으로 이동 속도가 느릴 것이다. 빙하의 온도 외에 빙체의 형태와 경사, 설원의 규모 등에 따라서 빙하의 이동 속도는 달라진다.
곡빙하의 이동에 있어서 이동 속도는 중앙의 상층부가 가장 빠르고 기반에 가까울수록 느리다. 이는 마찰력과 관련이 있다. 이는 하천에서 유속 분포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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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이 좋아서 전공하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여전히 용어의 순화 내지는 대체는 필요해 보인다. 영어나 독일어, 프랑스어 등으로 된 용어를 한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일본의 번역을 그대로 따른 경우가 많아 전공자도 그냥 봐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태반이다.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학자들의 학문적인 자존심을 지키는 길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어렵고 전문적인 내용을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게 적절하게 설명하는 것이 학자가 해야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좀 바꿉시다. 쫌!
2016. 2. 14.
국제시장, 흙수저 그리고 아버지 - 허삼관 매혈기(위화, 1995)
힘들게 번 돈을 두고 사람들은 '피, 땀 흘려 번 돈'이라 한다. 허삼관은 땀 흘려 돈을 벌기도 했고, 피 흘려 돈을 벌기도 했다. 땀 흘려 번 돈은 힘을 쓰고 그 대가로 받은 돈이고, 피 흘려 번 돈은 몸의 일부를 팔아 번 돈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중국의 문화혁명 시기니 1960년대 중국에서는 피를 파는 일이 있었나보다. 1960년대 대한민국에서도 피를 파는 사람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허삼관이란 남자는 어려운 시기를 살았던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아내를 얻기 위해 피를 판 돈을 썼고, 사정이 어찌되었든 세 아들을 위해 여러 번 피를 판 보통 아버지다. 가진 것도, 물려받은 것도 없는 허삼관을 2016년 대한민국에서 회자되는 말로 한다면 딱 흙수저다. 수십년 전 보릿고개 넘기가 힘들던 시기 피를 팔아 처자식 배고픔을 면할 수 있었다면 우리내 아버지도 피를 팔았을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이 동생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파독광부로 지원을 하고, 돌아와서 또 전쟁통인 베트남으로 가는 걸 보며 짠한 감정을 느꼈던 것과도 묘하게 닮아있다.
허삼관의 얘기는 그저 소설 속 얘기가 아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뛰어 2016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도 허삼관의 얘기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땀 흘려 번 돈으로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서 피라도 팔 수 있다면 감지덕지라고 해야할까?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가끔 장기매매와 관련된 스티커를 본 적이 있다. 피는 어느 정도는 뽑아도 잘 먹고, 잘 쉬면 다시 생기는 것이지만, 장기는 다른 문제다. 장기매매가 너무 극단적이라고 한다면 제약회사의 임상실험은 어떤가? 다른 일자리와 비교해서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어 젊은이들이 임상실험에 지원한다는 기사를 보았는가? 소설 속 허삼관은 같이 매혈을 했던 근룡이가 매혈 이후에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보았고, 자신도 아들을 위해 사나흘 간격으로 매혈을 하면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돌아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삼관의 매혈은 대안이 없는 선택이다. 임상실험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선택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땀 흘려 번 돈은 피 팔아 번 돈보다 작다. 땀 흘려 번 돈은 값진 것이지만, 피 팔아 번 돈은 때론 달콤하기도 하고, 때론 너무나 치명적이다. 당장 눈 앞에 닥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피를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은 너무 가혹하다. 가진 것 없고, 물려받은 것 없는 이들이 땀 흘려 당당하게 생을 설계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그런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는 건 너무 이상적인 걸까?
나는 읽는다. -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정석주, 2015, 샘터)
일년에 천 권 넘게 책을 구입한다는 저자의 독서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40여년 모은 책이 3만 여권이 넘는다고 하니 부러울 따름이다. 앞으로 제주도로 내려가 여행자를 위한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생각도 멋지다. 몇 년 후에는 제주도의 새로운 명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읽었던 책 얘기는 이정도 하고, 내가 읽었던 책 얘기를 좀 해야겠다. 나의 청소년기를 관통한 책이라고 한다면 단연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꼽는다. 시오노 나나미의 행적에 대해 실망스러운 면이 있고, 책의 내용에 오류가 많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된 책이라는 점 만으로도 나에게는 특별한 책이다. 고등학교 1학년었던가, 2학년이었던가..... 아무튼 학교 도서관에서 '로마인 이야기 2권'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부제는 '한니발 전쟁'. 역사책인지도 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로는 1권부터 한 권, 한 권 서점에서 책을 사서 읽고 모으기 시작했다. 재미있었다. 딱 그 말이면 당시 나의 '로마인 이야기'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듯 하다.
대학교 3학년 때는 교수님 연구실에서 책을 빌려 읽곤했다. 교수 연구실에서 빌린 책이라고 해서 꼭 전공과 관련된 책만 있는 건 아니었다. 자연지리를 전공하신 교수님께서 읽고 추천해주신 책이었는데 전공과 직접, 간접적으로 관련된 책이 많았지만 딱히 분야가 정해진 건 아니었다. 그때 읽었던 책 중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 몇 권은 졸업 후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사놓고서는 조용히 책장에서 잠자고 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한 달에 책을 두 세권은 샀다. 그 책을 다 읽은 것은 아니었다. 조금 읽다 이런 저런 이유로 놓아버린 책이 더 많았지만 책장에 책이 늘어갈수록 마음만은 든든하고 좋았다. 내가 독일로 건너가고 나면 내 책을 죄다 어디 기증하겠다는 어머니의 말에 친구들을 불러 책다발을 넘겼는데, 가끔 그 친구들 집에 들러서는 내가 보고싶은 책을 몇 권 뽑아오기도 한다. 어제도 친구가 보고싶다던 책을 한 권 넘겨주었는데 언젠가는 다시 돌고돌아 나에게 돌아오겠거니 생각하고 있다.
새해 들어서는 시립도서관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이상하게 빌려 읽는 책은 좀 읽다가 기한에 쫓겨 반납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한 번에 네 권 정도 빌려서 2주 뒤에 반납하는데, 모두 다 읽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달하고 반 정도가 지난 지금 열 권 정도는 읽은 듯 하니 확실히 예전보다 독서양은 많아졌다. 독서양이 늘어나니 조금씩 책 읽는 속도도 붙는 것 같다. 수험생 생활 중에 독서를 사치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수험생이라고 꼭 시험공부와 관련된 책만 보란 법은 없다.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머리를 식히는 시간도 필요하다 생각한다. 또 독서양이 늘어나다 보니 전공서적과 논문을 읽는 데도 속도가 붙는 것 같아 도움을 받고있다.
오늘은 설연휴 전에 빌린 네 권을 반잡하고 다섯 권을 빌렸다. 시집 한 권, 소설 두 권, 자연과학 두 권. 시집은 공부하는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볼까 한다. 한참을 책상 앞에 앉아 전공책과 씨름하다 찬 바람 쐬고 시 한 수 읽으며 휴식을 가져볼까 한다. 이정도면 수험생도 할만 하지 않을까?
2016. 2. 12.
행복을 찾아 가는 길 - 내가 행복한 곳으로 가라(김이재, 2015, 샘터)
성공이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입장이 있겠지만, 저는 성공한 삶이란 그 사람의 꿈의 공간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p.62)
지리적 관점에서 성공은 최고, 최초라는 수식어로 설명되는 결과가 아니라 '내가 행복한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재미있게 하는 상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성공을 정의하게 되면 내가 빛나는 장소, 성공에 이르는 길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겠죠. 내가 정말 행복하게 몰입할 수 있는 일만 제대로 찾는다면, 방황하다 출발이 좀 늦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행복한 성공에 이르는 고속도로에 진입한 셈이니까요.(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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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한 곳으로 가라' 제목이 시원 시원한 게 마음에 든다. 이 책도 빌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도서관을 찾았는데,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내려갔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저자 김이재 교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책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해주는 따뜻한 응원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성공에 대한 저자의 정의가 재미있다. '그 사람의 꿈의 공간이 많아지는 것' 멋지다. 누구나 성공을 바라지만 어디로 가면 성공할 수 있는지 누가 알려주면 참 좋으련만 그렇지 않으니 성공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저자의 정의를 따르면 성공에 다가가는 길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성공을 위해 내 꿈의 공간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니 내 안의 목소리에 귀기우려야 할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30대 중반을 넘어 마흔을 향해 달리고 있는 지금이 어찌되었든 내 인생의 기로가 아닐까 한다. 2015년의 쓰라린 경험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말만큼 쉽진 않다.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큰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차디찬 강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때는 내 꿈의 공간을 그려보아야겠다.
나는 교사다. 물론 지금은 일을 쉬고 있지만, 나는 예전에도 교사였고, 지금도 교사요, 앞으로도 교사의 길을 가고자 한다. 지금은 교직에서 내 뜻을 펼칠 수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리는 학교에서 꿈을 펼칠 수 있는 그런 날을 그려본다.
2016. 2. 3.
정보는 공유하는 거야! - 지리과 임용 전공 기출문제 분석자료(2009~2016)
중등임용 지리과 전공 기출문제 분석자료(2009~2016)
문제야 교육과정평가원 들어가면 다 있는 것이고, 분석은 내 기준으로 분류하고 키워드를 뽑아본 것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또 분석자료만 봐서는 별 소용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무튼 정보는 공유하는 거니까!
뒤늦게 임용시험을 준비하다보니 이래 저래 부족한 것도 해야할 건 더 많지만, 올 한 해 건강하게 공부하려고 한다.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시험 그 이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목표로 공부 해야겠다. 그래야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그렇게 건강하게 다시 학생들 앞에 설 수 있지 않겠는가.
어딘가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많은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나의 잠정적인 경쟁자들을 응원한다. 1년 후에 시험에 지친 괴물이 아니라 큰 뜻은 가진 교사로 당당하게 설 수 있길 기대한다. 아자아자!
2016. 2. 1.
그냥 '지리'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2015, 을류문화사) 중에서
건축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걸 업으로 삼는 지리학을 공부하다 보니 건축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영화 '건축학개론'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이해를 시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건축학개론의 시작입니다"라는 대사를 들으면서 '건축학'을 '지리학'이라고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영화에서도 그랬고, 가끔 등장하는 건축가라는 사람들은 벽돌을 직접 쌓고, 철근을 나르는 일명 '노가다'의 이미지 보다는 사무실에서 우아하게 도면을 보고, 멋드러진 모형을 만드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 모습은 엔지니어라기 보다는 예술가에 가깝단 생각이 든다. 건축가인 저자는 그 점을 깨고싶어하는 듯 보인다. 건축을 예술이면서 과학이고, 정치, 경제, 사회가 어우러진 그냥 '건축'이라 말하고 있다.
건축의 세계를 잘은 몰라도 이리 저리 주워들은 지식을 동원해 생각을 해봐도 그냥 '건축'이란 표현 외에 건축을 더 잘 표현하는 찾기란 쉽지 않을 듯 하다. 단순히 집을 여러 재료를 이용해서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집에 살 사람을 생각한다면 이것 저것 생각할 것들이 많아지지 않겠는가?
건축이란 분야가 공학과 예술 사이에서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고 저자는 볼맨 소리를 하지만, 내가 공부한 '지리'보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 학문하는 사람들이야 통섭이 중요한 화두인 요즘 시대에 지리학은 나름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에 비하면 초중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지리와 일반들이 인식하는 지리는 의 위치는 참담한 수준이다. 앞으로 교육과정이 바뀌면 사정이 좀 달라질까 기대를 했지만, 아직은 글쌔올시다.
지리도 그냥 '지리'다. 지리는 과학이기도 하고, 사회이기도 하다. 정해진 틀 안에 집어넣기에는 아귀가 잘 맞지도 않고, 철창 속 새 같아 보이기도 한다. 건축이 그냥 '건축'이듯, 지리도 그냥 '지리'다.
2016. 1. 12.
캥거루 흙수저 엄마
지금이 독립할 좋은 기회라 생각하는 아들은 이사에 두팔 벌려 격하게 찬성을 하는 바이지만, 결국 이야기는 불편한 결혼 이야기로 옮겨간다. 아들이 결혼을 하면 아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내어주고 두 분은 이사를 하시겠다고 하신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사를 하셔도 된다는 아들의 말에 결혼 전에는 어름도 없다고 강경하게 맞서는 엄마다. 오고가는 대화 중에 엄마는 어디서 들으셨는지 흙수저 얘기를 꺼내셨다.
"부모 재산이 5000만원이 안되면 흙수저라 카드라. 그러니까 느그는 둘 다 흙수저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냐는 아들의 타박에 TV에서 그 카드라는 엄마의 말에 아들은 뭐라 대꾸를 해야할지 몰랐다.
아들이 서른이 넘어 유학을 가겠노라 했을 때, 변변히 뒷바라지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몰래 눈물을 훔치던 엄마였다. 그게 벌서 햇수로 7년 전 일이다. 그 일도 벌써 한 참 전 일이 된 걸 보면 시간은 야속하게 빨리 흐른다. 아들은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데 엄마는, 부모는 해준 게 없어,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아들에게 미안한가 보다.
지난 2015년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흙수저'란 말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때, 그들의 부모들은 속으로 얼마나 울어야했을까. 스스로를 흙수저라 칭하는 젊은이들도, 그들의 부모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것이지 보통의 사람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자책하고,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미안해한다. 잘못한 게 없는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심지어 사과를 해야하는 상황을 납득할 이가 몇이나 될까? 납득할 수 없지만 그렇게 흘러가는 현실 앞에 절망하지 않고 의연할 수 있는 이는 또 얼마나 될까?
글을 쓰면서도 답답하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사실 모르겠다. 개인이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주저앉아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자, 부모님께도 당신들이 미안해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자. 그 시작은 공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시대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젊은이들과 부모님들께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2016. 1. 7.
나의 그림자는 어떤 얘기를 하고 있을까? - 마크 레비, 그림자 도둑(2010)
그림자 도둑(출처:다음 책) |
정말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쓴다. 2016년에는 차분히 글을 쓰는 노력을 해볼까 한다.
2016년 첫 번째 글에서는 해가 바뀌고 시립도서관 대출증을 만들고 처음으로 손에 잡은 책 "그림자 도둑(마크 레비, 2010)"에 대한 얘기를 풀어볼까 한다.
주인공 소년은 다른 사람의 그림자와 자신의 그림자가 겹치면 상대의 그림자를 훔칠 수 있다. 훔친 그림자는 소년에게 그림자의 주인 이야기를 해준다. 그 이야기는 그림자 주인이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아픔과 슬픔, 고민에 관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소년은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기도 하고,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림자는 어둠을 상징하곤 한다. 이 소설에서도 역시 그림자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소년의 어린 시절 친구 였던 이브 아저씨의 말처럼 그림자는 사람의 내면에 감춰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아픔과 슬픔이다. 또는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것들일 수도 있다. 다른 이들의 그림자를 통해 다른 사람의 어둠을 이해하지만 주인공 소년은 정작 자신의 그림자가 하는 이야기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떠나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어머니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고, 어린 시절 추억 속의 소녀 클레아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은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걸림돌이었다.
누구나 가슴 속에 그림자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간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싫은 것이든,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이든 말이다. 나의 그림자는 어떤 말을 할까? 풀어내지 못한 사연은 어딘가에서 인생의 어느 순간에서 우리를 힘들게 할지 모른다. 짙게 드리운 그림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그렇게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내면을 깊게 들여다 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저런 복잡한 일들이 많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많이 한다. 주인공과 친구 뤼크의 관계가 그런 것 처럼 말이다. 친구라는 존재는 때로는 가족보다 더 가깝기도 한 걸 보면 그들이 나에게는 그림자 도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