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9.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순례길, 그 길을 생각하다

카미노를 걸으며 볼 수 있는 풍경과 그 곳의 날씨에 대한 얘기는 이미 했고, 이번에는 그 길에서 느꼈던 것들, 내가 했던 생각에 대해 나눠볼까 한다.

이미 앞선 글에서 밝힌 것처럼 카미노는 한편 아름다워 보이지만 또 한편 가혹하기도 하다. 카미노를 걷기 시작하고 며칠은 몸이 고생이다. 물론 트래킹이나 등산으로 잘 단련된 사람은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나흘은 고생을 해야하는 게 보통이다. 걷기에 필요한 근육이 천천히 만들어지는 시간이다. 물집이 잡혀 걸음 걸음이 고욕일 수도 있고, 근육통으로 고생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몸이 천천히 카미노에 적응하게 된다. 물집도 잘 관리하면 며칠 내에 큰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된다. 근육통은 스트래칭으로 잘 풀면서 가면 큰 문제가 없다.
사실 몸이 가장 힘든 때는 보통 초반이다. 물론 나의 경우 메세타를 지나며 정강이 쪽 인대가 말썽을 일으켜서 며칠 크게 고생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카미노의 초반 2주 정도를 함께 걸었던 로버트 아저씨가 내 몸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컨디션은 그날 그날 달라지고, 시시각각 또 변한다. 내 몸이 뭐라고 하는지 잘 듣지 않고는 그 먼 길을 걷기 힘들다. 컨디션이 좋다고 너무 자만해서도 안 된다. 나의 경우 메세타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40km를 하루에 걸었다. 물론 하루만 걷고 말 길이면 대단히 힘든 일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리고 또 수백km를 걸어야 하는 길이라 사정이 좀 달랐다. 그날 저녁 충분히 스트래칭을 하고 쉬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더니 다음날 바로 신호가 왔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엔 오전에 몇시간을 걷고 멈춰서야 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다. 된통 고생을 하고는 그날 오후에 약국에서 파스를 사다 붙이고 통증을 참으며 스트래칭을 했다. 다음날은 진통제를 먹고 걷긴 했지만 생각보다 회복이 빨라 다행이었다. 메세타에서 고생했던 며칠은 잊을 수 없다. 로버트 아저씨는 하루 하루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도 말씀하셨다. 하루 하루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큰 의미이고, 힘든 여정을 잘 버텨준 내 몸에 감사할 따름이다.

오랜 기간, 매일 매일 꾸준히 걸어야 하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내 몸 상태도 중요하지만 날씨와 길 자체도 큰 변수가 된다. 날씨 얘기는 앞선 글에서도 했지만 좋지 않은 날씨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고 생각을 하는 편이 좋다.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자기 전에,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꼭 확인하는 것이 날씨다. 날씨가 좋아도, 좋지 않아도 걸어야 하는 길이 카미노다. 날씨는 자연 앞에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해준다. 나는 로그로뇨를 지나 부르고스로 가는 길에서 가장 혹독한 날씨를 경험했다. 소나기를 만나 홀딱 젖은 상태로 한 시간 넘게 걸어야 했던 날도 있고, 그리고 이틀 정도는 엄청난 바람을 정면으로 받으며 걸어야 했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피할 곳 하나 없는 들판에서 그래도 걸어야 했다. 별 수 없다. 아마 한여름이라면 열기와 햇볕을 견디며 걸어야 하는 곳이 카미노다. 선택은 딱 두 가지다. 걷던지, 멈추던지. 불평을 한다고 날씨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순응까지는 아니라도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는 하루 하루가 고욕일 수 있다. 그것 또한 선택이다.

그라뇽에서 만난 자원봉사로 호스피탈레로 일을 하고 있던 일 데폰소 아저씨는 부르고스를 지나 걷는 메세타에서의 카미노가 진짜 카미노라고 얘기하셨다. 너무나도 평탄한 곳에 곧게 뻗은 길은 머리 속에서 그릴 때는 얼마든지 쉽게 지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곳에서 일정을 이틀 정도는 줄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곳을 걸으며 왜 그것이 진짜 카미노인지를 알게 되었다. 메세타에서 다리가 고장나서 고생을 한 탓도 있겠지만 몇 시간씩 그저 곧게 뻗은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은 그리 쉽게 얘기할 것이 못 된다. 곧게 뻗은 도로와 나란히 걸어야 하는 길에서는 지나는 차를 보면 차로는 5분, 10분 이면 갈 길을 걷고 있는 것이 한심하다 느껴지기도 했다. 또 들판을 가로지르는 너무나도 곧게 뻗은 길을 하염없이 걷을 때는 무슨 정신으로 걸었나 생각하면 지금도 힘이 든다. 저 멀리 보이는 길 끝에는 마을이 있을까 열심히 걸어보아도 같은 길이 계속되는 곳은 빨리 지나고 싶단 생각이 들지만,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미친듯이 걸어서 빨리 지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으니 어찌할 방법이 없는 곳이었다. 로버트 아저씨와 앤디 아저씨와도 메세타에서 헤어졌다. 날씨가 좋을 때 더 가야겠다는 아저씨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메세타를 그냥 버스를 타고 지난다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 지루하다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렇기에 반대로 그 곳이 진짜 카미노란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야 하는 길이 카미노인까 말이다.

이 글을 마무리 하며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 내 가슴 속에 남은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야 하는 길 카미노. 그 길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는 결국 개인의 몫이다. 매 수간이 꽃길 같을 수는 없지만, 이제 겨우 2주 정도가 지났지만 나의 기억은 이미 상당히 미화되었다. 힘들었던 기억들도 시간이 더 지나면 결국 추억이 되는가 보다. 그런 길을 나는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걷겠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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