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 "잃어버린 예법을 시골에서 찾는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로구나. 지금 중국은 오랑캐처럼 머리 깎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어 고대 한나라 관원의 위엄과 법도를 알지 못한 지 백여 년이 지나고 말았다. 유독 연극하는 마당에서만 옛적의 검은색 모자, 둥근 옷깃, 옥 허리띠, 상아 홀을 본떠 장난과 웃음거리로 삼고 있다. 아아, 중국의 옛 늙은이들은 다 세상을 떠나겠지만, 혹여 얼굴을 가리고서 차마 볼 수 없어 하는 이가 있지 않을까? 아니면 혹시 이 연극을 즐겁게 관람하면서 옛적의 제도를 상상하는 자라도 있지 않을까?
동지사 사신이 되어 북경에 들어갔던 자가 남방의 오(吳) 땅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오 땅의 사람이 말하길, "우리 고장에 머리를 깎는 가게가 있는데 좋은 세상의 즐거운 일이라는 뜻의 '성세낙사(盛世樂事)'라는 간판을 붙여놓았소"라고 하기에, 서로 쳐다보며 한바탕 웃다가 곧이어 눈물이 핑 돌더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서글퍼 말했다. "습관이 오래되면 천성이 되는 법이다. 세속에서 이미 습관이 되고 말았으니 어찌 변화시키겠는가? 우리나라 부인네의 의복이 자못 이 일과 닮았다. 예 제도에서는 부인들 옷에도 띠가 있었으며 모두 소매가 넓고 치마가 길었다. 고려 말에 으르러 여러 임금들이 원나라 공주에게 장가들면서 궁중의 머리 모양과 의복이 모두 몽골 오랑캐 제도가 되었다. 그때 사대부들은 다투어 궁중의 양식을 사모하여 마침내 풍속이 되고 말았다. 삼사백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제도는 변하지 않고 있다. 저고리 길이는 겨우 어깨를 덮고 소매는 동여맨 듯 좁아 경망스럽고 꼴사나운 모양이 정말로 한심스럽다. 여러 고을 기생들의 옷은 도리어 우아한 옛 제도를 보존하여 비녀를 꽂아 쪽을 찌고 원삼에 선을 둘렀다. 지금 그 넓은 소매가 너울거리고 긴 여가 치렁거리는 것을 보면 한결 기분이 좋다. 지금에 비록 예법을 아는 집안이 있어 그 경망스런 습속을 고쳐 옛 제도를 회복하고자 하더라도, 세속의 습관이 오래되어 넓은 소매와 긴 띠를 기생의 옷차림과 똑같다고 여겨 그 옷을 찢어버리며 자기 남편을 나무라지 않을 부인네가 있겠는가?
이홍재 군은 약관 나이부터 내게 배웠다. 커서는 중국어를 익혔으니 그의 집안이 대대로 역관인 까닭이다. 나는 그에게 더 이상 문학을 권하지 않았다. 이군은 중국어를 익히고 나서 관복을 갖추고 사역원에서 벼슬살이를 했다. 나 역시 속으로 이 군이 전에 글을 읽을 때는 자못 총명하여 문장의 도를 알았지만 지금은 거의 다 잊어버려 까먹었을 거라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하루는 이 군이 자기가 쓴 글이라고 하며 제목을 '자소집(自笑集)'이라 하고는 내게 보여주었다. 논(論), 변(辨), 서(序), 기(記), 서(書), 설(說) 등 백여 편인데 모두 해박하고 논리 정연하여 한 작가의 경지를 이루었다.
나는 처음에 의아해서 물었다.
"자기 본업을 버리고 이런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군이 죄송해하며 대답했다.
"이것이 바로 본업이고 과연 쓸데가 있습니다. 대개 사대교린의 외교 관계에서는 글 잘 쓰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고 옛 고사에 익숙한 것보다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까닭에 사역원의 관리들이 밤낮으로 익히는 것은 모두 고전의 문장입니다. 제목을 주고 재주를 시험하는 것도 다 여기에서 취합니다."
나는 이에 정색을 하고 탄식했다.
"사대부들은 태어나 어려서는 독서할 줄 알지만, 자라서는 과거 문체를 배우고 기교를 꾸미는 변려체 문장이나 익힌다네. 과거에 합격하고 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매달리지. 그러니 어찌 다시 이른바 고전의 문장이 있다는 것을 알겠는가?"
역관이란 직업은 사대부들이 얕잡아 보는 바다. 내가 염려되는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책을 저술하고 이론을 세워가는 참된 일을 도리어 아전이나 서리의 말단 기예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연극 마당의 검은 모자나 고을 기생의 긴 치마처럼 되지 않을 것이 거의 없으리라. 나는 이런 점이 걱정되는 까닭에, 이 문집에 대해 특별히 쓰고 나서 다음의 서문을 쓴다.
"아아! 읽어버린 예법은 시골에서 찾아야 한다. 중국의 옛 제도를 보려면 마땅히 연극배우에게서 찾아야 하고, 부인네 옷의 우아함을 찾고자 한다면 마땅히 고을 기생에게서 살펴야 할 것이다. 문장의 성대함을 알고자 할진대, 미천한 관리인 역관에게 부끄럽다."
<자소집서(自笑集序)>(연암집(燕巖集), 박지원, 박수밀 역, 지식을만드는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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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씨 연습삼아 필사하고 있는 박지원의 연암집 중에서 요즘 세상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글이 있어 소개한다.
사대부들은 어려서 독서를 했지만 결국 과거를 위한 변려체 문장이나 익히고 고문을 멀리한다고 연암은 탄식한다. 200여 년 전의 글이 다시 살아난 것인가? 변려체 문장 익히는데 열을 올리는 조선의 사대부나, 학교시험, 수능시험, 토익시험, 공무원시험 등등 온갖 시험 공부에만 목을 매고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나 크게 다를 게 무엇인가. 나라고 다를 게 있겠냐 만은. 안타깝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 있다보면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저마다 공부를 하고 있지만 참다운 공부를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서는 누구는 토익시험, 누구는 경찰공무원 시험, 누구는 행정직 공무원, 또 누구는 무슨 자격증, 그 와중에 나는 임용시험. 학기 중이라면 과제하는 학생들이라도 보이련만 봄을 향해 가고있는 대학 도서관의 군상은 수험생이다.
연암이 꼬집은 변려체 문장이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나 알겠는 것은 결국 시험이 끝나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이땅의 대학생, 취업준비생 중에 토익이라는 놈에게서 자유로운 이가 몇이나 될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도 영어로 자기 생각을 막힘없이 말할 수 있는 이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오죽하면 외국인이 영어로 뭐 하나 물어보면 땀을 비오듯 흘리는 수준을 넘어 물총 쏘듯 흘리는 TV광고를 보고 있노라면 씁쓸할 따름이다. 다른 시험공부라고 별반 다를 건 없다. 물론 어떤 지식이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살다보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지만, 선발을 위한 시험은 사람을 걸러내는 역할을 할지는 몰라도, 그 시험공부라는 것이 시험이 끝나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는 점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있다.
시험이 가진 한계이니 어쩔 수 없다 말하는 이도 있을 게다. 그래도 나는 나중에 써먹을 수 있게 뭐라도 하나 고이고이 접어두고 싶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지금 시간이 조금은 생산적이고, 나의 발전을 위한 것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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