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2.

무작정 나서는 답사 2 - 동래읍성 그 두번째



동래읍성 답사 지도

지난 일요일에 이어 두번째 답사다. 지난 답사가 동래읍성을 따라 걷는 것이었다면 두번째 답사는 동래읍성 내 주요 시설을 찾아보았다. 동래부 동헌이 복원되어 있고(물론 옛 모습 그대로는 아니다), 장관청, 송공단 정도가 남아있을 뿐 나머지는 작은 표지석만 있을 뿐 모두 사라진 것들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숨은 그림 찾기 하듯 표지석을 찾아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일일 수도 있겠다.


첫번째 답사 후에 독일에서 방문했던 몇몇 도시가 떠올랐다. 특히 뉘른베르크 구시가지를 둘러싼 성벽이 생각났다. 동래읍성이 우뚝 서 있다면 부산의 깊이 또한 더 할텐데 하는 뭐 그런 생각말이다. 없는 걸 아쉬워하면 무얼하나, 그래서 두번째 답사는 상상력을 동원해서 거대한 성벽을 다시 쌓고, 웅장한 성문도 만들어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답사는 지하철 교대역에서 시작한다. 교대역을 나서 동래읍성을 향해 걸음을 옮기면 처음 만나는 것이 세병교다. 이중문의 읍성 남문의 바깥쪽 성문을 세병문, 안쪽의 문을 주조문이라 했다. 세병문의 이름을 따 다리의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세병교의 원래 이름은 광제교인데, 정조 대에 나무 다리를 돌 다리로 바꾸고 후에 이름을 세병교라 했다고 한다. 1872년 군현지도에는 광제교라는 이름이 보인다. 왜로 건너가던 사신은 동래부사를 만나고는 남문을 나서 세병교를 건너 부산포로 아니면 왜관으로 갔을 것이다. 반대로 왜에서 건너온 이들도 동래부사를 만나기 위해서는 세병교를 건너야했다. 세병교보다 하류에 다리가 하나 더 있었는데, 이섭교라 했다. 세병교의 상류에는 만년교가 있었다. 동래부 읍치에서 좌수영으로 가기 위해서는 동문을 나서 이섭교를 건넜을 것이고, 만덕 고개를 넘어 서쪽으록 가기 우해서는 서문을 나서 만년교를 건넜을 것이다. 세병교, 이섭교, 만년교를 지나는 길은 과거 동래부의 주요 도로라 할 수 있다.

세병교를 지나면 동래경찰서가 눈에 들어온다. 동래경찰서 옆에는 등나무를 심은 작은 쉼터가 있다. 이름이 거창하다 '여민정(與民亭)'. 백성에게 주는 거 치곤 좀 소박하다. 경찰서장 나으리의 은혜에 감사해야 하나? 암튼 쉼터에는 작은 표지석이 하나 있다. 지금 경찰서가 선 자리는 과거 농주산이 있던 자리였다. 남문 앞에 있던 작은 언덕이었을 농주산은 풍수적으로 동래읍성의 앞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산이었다. 서울로 치면 남산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겠다. 농주산에는 임진왜란 당시 전사한 이들을 위한 충렬사가 있었다. 후에 객사 뒤편에 송공단을 지었고, 농주산에 있던 충렬사는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농주산을 끼고 돌면 바로 남문이다. 영조 대에 다시 쌓은 읍성은 남문을 익성(이중문)으로 지어 위엄이 있었다. 새로 쌓은 성벽은 높이가 8m였다니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남문 앞은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지금도 부산의 주요 간선도로 중에 하나이다. 지금은 차가 가득한 넓은 도로에 웅장한 성벽을 그려본다. 남문을 지나 성 안으로 들어서면 큰 길이 있고 눈 앞으로는 객사가 눈에 들어온다. 남문에서 객사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서는 장이 섰다. 길의 양쪽으로는 동래부사를 보좌하던 향청, 군관청, 장관정 등의 건물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일제시대 신작로를 내는 과정에서 훼손되었다. 장관청은 다행으로 동래기영회에서 관리하면서 남아있지만 다른 건물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또 숨은 그림 찾기를 해야하나 보다.

다시 큰 길을 따라 올라가면 객사가 보여야 하는데 지금은 동래시장 건물이 객사를 대신하고 있다. 동헌이 사똥가 업무를 보던 곳이라면 객사는 왕권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러니 읍성 내 건물 배치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다. 동래읍성 객사는 남문을 지나면 정면, 높은 곳에 우뚝 솟아있었을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동헌의 중심인 충신당이 10칸(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28칸)인데 비해 객사의 중심 건물은 42칸이었다고 한다. 위치도 위치지만, 규모에서도 압도적이다. 현재는 객사 뒤편에 있던 송공단만 남아있을 뿐 객사는 학교(현 내성초등학교) 건물로 이용되다 헐어버리고 동래시장이 들어섰다. 시장으로 으로 올라가는 길 한켠에 서있는 표지석은 초라해 보인다.

객사의 오른쪽에는 동헌이 있다. 동헌의 부속 건물도 일제시대 객사와 마찬가지로 수난을 겪었다. 일제에 의해 동헌 부속 건물 중 일부가 철거되었고 동헌의 대문인 동래독진대아문과 망미루는 금강공원으로 옮겨졌다. 다행으로 2년 전 동래독진대아문과 망미루는 동헌 자리로 돌아왔지만 백년 전 제 위치에는 이미 다른 건물들이 들어서 좁은 공간에 몰아놓았다. 그래도 동헌 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이 더 의의가 있는 일이라고 봐야겠지. 복원 과정에서 새로운 목재를 사용하여 아직은 좀 어색해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문화재의 깊이를 더해줄 거라 생각한다.

아직 찾아야 할 숨은 그림이 많다. 다음주에도 한 번 더 나서야겠다.
두번째 답사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 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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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답사에서 찾지 못한 암문터를 찾았다. 오래된 골목이 미로처럼 꼬인 주택가 사이에 암문터 표지석이 있었다. 좋은 정보를 주신 동헌 문화해설사 선생님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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