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27.
무작정 나서는 답사 1 - 동래읍성
동래읍성 답사 지도
부산에서만 30년도 더 살았는데 아직도 부산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없는 지식이라도 쥐어짜서 뭐라도 결과물을 하나씩 만들어보려 한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말을 이용해서 부산 곳곳을 답사하고 간단하게 정리해볼까 한다. 오늘은 그 첫번재로 동래읍성이다.
동래읍성을 첫번째 답사 장소로 정한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라도 해도 크게 틀린 건 없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내가 살던 곳이 바로 오늘 답사한 동래읍성 근처였다. 지금은 재개발 광풍에 옛 골목은 사라져버렸지만 그래도 내 기억 속 길을 다시 따라가보고 싶었다.
동래읍성은 조선시대 동래부의 읍성이다. 동래읍성은 남문이 중심이 되는 출입문이었고, 동문과 서문, 북문이 있었다. 서문과 서장대 사이에 암문이, 북장대와 동장대 사이에 인생문이 있었다. 조선 초에 축성된 읍성은 현재의 동래시장을 중심으로 한 좁은 동래읍치를 방어하기 위한 시실이었다. 오늘 둘러 본 동래읍성은 영조대에 개축한 것으로 조선 초의 읍성에 비해 6배 정도 크게 지었다고 한다. 일본과 마주하고 있는 관문이란 중요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암문과 인생문은 조선 초의 읍성의 일부가 아니라 후기의 읍성에 해당한다.
답사의 시작은 동래향교다. 동래향교는 조선 태조 원년에 지금의 동래고등학교 자리에 세워졌다가 몇 차례 자리를 옮겨 1815년에 지금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1872년 군현지도를 보면 동래읍성 밖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향교 옆에는 명륜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명륜동이란 지명은 향교가 있는 동네라 붙은 것이다. 보통 향교가 있는 곳은 '교동', '교리' 등의 지명이 흔한데 명륜동이라니 좀 있어보인다. 처음 향교가 섰던 자리에는 역사가 오랜 동래고등학교가, 현재의 향교 옆에는 명륜초등학교가 있는 것도 어찌보면 우연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향교 옆으로 읍성으로 이어지는 골목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모두 사라져버렸다. 30년 전 기억으로는 북문과 서장대는 가본 기억이 있다. 북문에서 찍은 사진도 있으니 그건 틀림 없다. 성벽은 북문 옆으로 일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재는 향교 옆에 들어서 아파트(현대아파트) 뒤에서 시작해서 서장대-북문-북장대 구간 성벽이 복원되어 있다. 북장대와 동장대 사이에 있는 인생문은 복원되었으나 작년 여름 비가 많이 와서 일부가 붕괴되어 복구공사 중이다. 현재 충렬사 관내에 위치한 동장대는 주변으로 둘러친 철조망을 따라 구경해야 한다. 충렬사 경내를 통해서 동장대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동장대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동래읍성을 헐어 그 돌로 쌓았다는 동래왜성의 주곽이었다고 한다. 동장대에서 동래고등학교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성벽 일부를 볼 수 있는데, 북문 주변 성벽이 최근에 복원된 것인데 비해 동장대 부근 성벽은 돌의 색으로 볼때 남아있던 성벽 위에 일부를 다시 쌓은 것으로 보인다. 남아있는 성벽 아래로는 골목을 따라 성벽으로 추정되는 흔적을 볼 수 있다.
서장대에서 북문을 지나 북장대-인생문-동장대로 이어지는 구간은 동래읍성의 북쪽에 위치한 산을 끼고 들어선 성벽인 탓에 시가지화 되지 않아 과거의 흔적을 찾기 쉽다. 하지만 남문을 중심으로 한 평지 구간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일제에 의해 성벽이 해체되고 도로가 새롭게 나면서 과거 흔적은 지워져버렸다. 과거 남문과 동문, 서문이 있던 터에는 작은 비석이 서 있지만 관심을 가지고 찾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어 아쉽다. 지하철 4호선 수안역 공사 중에 임진왜란 당시 해자 터가 발굴되었다. 성의 평지구간은 성벽 밖으로 해자를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안역에서 동래고등학교 쪽으로 향하는 간선도로는 해자가 있던 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의 간선도로 일부구간이 해자에 해당하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읍성을 둘러싸고 온천천이 흐르기는 하지만 읍성에서는 거리가 있고 온천천의 깊이를 생각할 때 천연해자 역할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동문-남문-서문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골목을 통해 과거 성벽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는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기 어려웠다. 암문의 위치는 읍치의 북서쪽에 해당하는데 동래구청에서 명륜초등학교로 이어지는 도로나, 향교 옆에 들어선 아파트 부근이 아닐까 추측 한다. 방어보다 통행이 목적이었다면 전자에, 방어가 목적이었다면 후자에 무게를 둘 수 있을 것 같다.
성벽을 복원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 수 있다. 과거의 모습이 잘 남아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고증을 통한 역사복원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일이다. 다만 철저한 고증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동래읍성의 복원 사업이 어떤식으로 진행되었고, 앞으로 어떤 사업이 계획되어 있는지는 좀 더 찾아보아야 할 부분인다. 산지 구간의 복원은 결과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져버린 평지 구간의 성벽 복원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시가지화 된 곳에 성벽을 다시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과거 성벽이 있었던 자리를 고증하고 그것을 알리는 작업은 물리적인 형태의 성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성벽을 복원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실제 베를린 시의 경우 베를린 장벽을 철거한 구간에는 바닥에 동판을 박아 장벽이 있던 구간을 표시하고 있다. 베를린장벽의 흔적을 따라 걷는 것은 베를린이 겪은 현대사의 굴곡은 따라 가는 것일 것이다. 좀 더 다양한 생각과 시도가 필요할 것 같다.
다음주에는 읍성 안밖에 있던 시설을 집중적으로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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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와 관련된 사진은 위에 링크한 지도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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