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제목만 들어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는 소설이다. "허삼관이 피 판 얘기" 간단하다.
힘들게 번 돈을 두고 사람들은 '피, 땀 흘려 번 돈'이라 한다. 허삼관은 땀 흘려 돈을 벌기도 했고, 피 흘려 돈을 벌기도 했다. 땀 흘려 번 돈은 힘을 쓰고 그 대가로 받은 돈이고, 피 흘려 번 돈은 몸의 일부를 팔아 번 돈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중국의 문화혁명 시기니 1960년대 중국에서는 피를 파는 일이 있었나보다. 1960년대 대한민국에서도 피를 파는 사람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허삼관이란 남자는 어려운 시기를 살았던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아내를 얻기 위해 피를 판 돈을 썼고, 사정이 어찌되었든 세 아들을 위해 여러 번 피를 판 보통 아버지다. 가진 것도, 물려받은 것도 없는 허삼관을 2016년 대한민국에서 회자되는 말로 한다면 딱 흙수저다. 수십년 전 보릿고개 넘기가 힘들던 시기 피를 팔아 처자식 배고픔을 면할 수 있었다면 우리내 아버지도 피를 팔았을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이 동생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파독광부로 지원을 하고, 돌아와서 또 전쟁통인 베트남으로 가는 걸 보며 짠한 감정을 느꼈던 것과도 묘하게 닮아있다.
허삼관의 얘기는 그저 소설 속 얘기가 아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뛰어 2016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도 허삼관의 얘기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땀 흘려 번 돈으로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서 피라도 팔 수 있다면 감지덕지라고 해야할까?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가끔 장기매매와 관련된 스티커를 본 적이 있다. 피는 어느 정도는 뽑아도 잘 먹고, 잘 쉬면 다시 생기는 것이지만, 장기는 다른 문제다. 장기매매가 너무 극단적이라고 한다면 제약회사의 임상실험은 어떤가? 다른 일자리와 비교해서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어 젊은이들이 임상실험에 지원한다는 기사를 보았는가? 소설 속 허삼관은 같이 매혈을 했던 근룡이가 매혈 이후에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보았고, 자신도 아들을 위해 사나흘 간격으로 매혈을 하면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돌아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삼관의 매혈은 대안이 없는 선택이다. 임상실험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선택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땀 흘려 번 돈은 피 팔아 번 돈보다 작다. 땀 흘려 번 돈은 값진 것이지만, 피 팔아 번 돈은 때론 달콤하기도 하고, 때론 너무나 치명적이다. 당장 눈 앞에 닥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피를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은 너무 가혹하다. 가진 것 없고, 물려받은 것 없는 이들이 땀 흘려 당당하게 생을 설계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그런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는 건 너무 이상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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