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

그냥 '지리'

과거에 건축은 과학이었다. 한 나라의 최첨단 기술을 과시하는 도구로서의 건축이 있었다. 건축은 어느 시대나 지구의 만유인력에 저항하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 주는 과학적 도구이자 결과물이었다. 반면 의술은 과학이 아니라 미신에 가까웠다. 지금도 오지에서는 무당들이 병을 고친다. 건축과 의학 이 둘은 19세기에 운명이 바뀌었다. 의학은 과학을 택해서 지금의 MRI와 각종 첨단 시설을 이용한 기술의 서비스가 되었다. 반면 건축은 예술을 택해서 지금껏 사회적 대접이라는 면에서 퇴보해 왔다. 건축이 예술이 되면서 질적으로 평가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00년 전에 이루어진 의학과 건축의 선택의 결과는 지금 의사와 건축가의 평균 연봉이 말해 주고 있다. 필자는 건축이 예술이라는 관념이 깨졌으면 한다. 건축은 예술이기도 하고, 과학이기도 하고,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이 종합된 그냥 '건축'이다.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2015, 을류문화사) 중에서

건축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걸 업으로 삼는 지리학을 공부하다 보니 건축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영화 '건축학개론'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이해를 시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건축학개론의 시작입니다"라는 대사를 들으면서 '건축학'을 '지리학'이라고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영화에서도 그랬고, 가끔 등장하는 건축가라는 사람들은 벽돌을 직접 쌓고, 철근을 나르는 일명 '노가다'의 이미지 보다는 사무실에서 우아하게 도면을 보고, 멋드러진 모형을 만드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 모습은 엔지니어라기 보다는 예술가에 가깝단 생각이 든다. 건축가인 저자는 그 점을 깨고싶어하는 듯 보인다. 건축을 예술이면서 과학이고, 정치, 경제, 사회가 어우러진 그냥 '건축'이라 말하고 있다.

건축의 세계를 잘은 몰라도 이리 저리 주워들은 지식을 동원해 생각을 해봐도 그냥 '건축'이란 표현 외에 건축을 더 잘 표현하는 찾기란 쉽지 않을 듯 하다. 단순히 집을 여러 재료를 이용해서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집에 살 사람을 생각한다면 이것 저것 생각할 것들이 많아지지 않겠는가?

건축이란 분야가 공학과 예술 사이에서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고 저자는 볼맨 소리를 하지만, 내가 공부한 '지리'보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 학문하는 사람들이야 통섭이 중요한 화두인 요즘 시대에 지리학은 나름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에 비하면 초중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지리와 일반들이 인식하는 지리는 의 위치는 참담한 수준이다. 앞으로 교육과정이 바뀌면 사정이 좀 달라질까 기대를 했지만, 아직은 글쌔올시다.

지리도 그냥 '지리'다. 지리는 과학이기도 하고, 사회이기도 하다. 정해진 틀 안에 집어넣기에는 아귀가 잘 맞지도 않고, 철창 속 새 같아 보이기도 한다. 건축이 그냥 '건축'이듯, 지리도 그냥 '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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