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12.

캥거루 흙수저 엄마

환갑을 바라보는 엄마는 불혹을 바라보는 아들과 마주 앉은 점심 밥상에서 기어이 흙수저 얘기를 꺼내셨다. 지금부터 십수년 전 엄마는 일 잘하는 도배기사셨다. 10년 가까이 도배일을 하시며 무릎 연골이 닳아 더이상 그 일을 할 수 없었던 엄마는 그렇게 오랫동안 해온 일을 그만두고 언제 끝이날지 알 수 없는 길고긴 재활의 시간을 지금도 살고 계신다. 몇년 전부터는 오전에 몇 시간 정도 하는 건물 청소 일을 하셨는데, 그마저도 몸이 더이상 따라주질 않아 계약이 끝나는 올 3월 말까지만 하고 그만두겠노라 말씀을 하셨다. 진작부터 힘이 든다 말씀을 하셨는데 아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잘 된 일이다 싶다. 일을 그만두시면 아버지 회사 근처로 이사를 할까 생각중이신가 보다.

지금이 독립할 좋은 기회라 생각하는 아들은 이사에 두팔 벌려 격하게 찬성을 하는 바이지만, 결국 이야기는 불편한 결혼 이야기로 옮겨간다. 아들이 결혼을 하면 아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내어주고 두 분은 이사를 하시겠다고 하신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사를 하셔도 된다는 아들의 말에 결혼 전에는 어름도 없다고 강경하게 맞서는 엄마다. 오고가는 대화 중에 엄마는 어디서 들으셨는지 흙수저 얘기를 꺼내셨다.
"부모 재산이 5000만원이 안되면 흙수저라 카드라. 그러니까 느그는 둘 다 흙수저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냐는 아들의 타박에 TV에서 그 카드라는 엄마의 말에 아들은 뭐라 대꾸를 해야할지 몰랐다.

아들이 서른이 넘어 유학을 가겠노라 했을 때, 변변히 뒷바라지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몰래 눈물을 훔치던 엄마였다. 그게 벌서 햇수로 7년 전 일이다. 그 일도 벌써 한 참 전 일이 된 걸 보면 시간은 야속하게 빨리 흐른다. 아들은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데 엄마는, 부모는 해준 게 없어,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아들에게 미안한가 보다.

지난 2015년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흙수저'란 말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때, 그들의 부모들은 속으로 얼마나 울어야했을까. 스스로를 흙수저라 칭하는 젊은이들도, 그들의 부모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것이지 보통의 사람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자책하고,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미안해한다. 잘못한 게 없는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심지어 사과를 해야하는 상황을 납득할 이가 몇이나 될까? 납득할 수 없지만 그렇게 흘러가는 현실 앞에 절망하지 않고 의연할 수 있는 이는 또 얼마나 될까?

글을 쓰면서도 답답하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사실 모르겠다. 개인이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주저앉아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자, 부모님께도 당신들이 미안해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자. 그 시작은 공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시대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젊은이들과 부모님들께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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