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20.

공간의 사회학 'OCCUPY KIEL'




바람 불어 좋은 날이다. 아침 저녁으로는 아직 제법 쌀쌀하지만 해가 나는 오후에는 봄은 봄이구나 싶다. 지난 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목요일 오후 길로 나섰다. 친구와 점심을 먹고 1시가 좀 넘어서 학교를 출발해서 천천히 걸어서 킬(Kiel)의 구시가지(Altstadt)를 둘러보았다. 이곳 생활도 벌써 반년이 넘었지만, 시내에 특별한 볼일이 있는 게 아니면 갈 일이 없다. 그리고 사실 특별히 볼 거리도 없는 것도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기자와 잠수함을 만드는 조선소가 있었던 이유로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도시를 복원하는 과정이 그렇게 원활하게 진행되지는 못했나 보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킬에서는 고풍스런 건물은 찾아볼 수가 없다. 뤼벡(Lübeck)이 아름도운 도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킬에 살고있는 사람들도) 킬이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만나보질 못했다. 그렇기는 해도 나름의 색깔을 가진 도시기에 나는 이 도시를 좋아한다.

시청 앞에는 '클라이너 킬'(Kleiner Kiel)이라는 호수가 있다. 원래는 구시가지가 남쪽으로 뻗은 꼭 사람 목젖 같이 생긴 곶(또는 아주 작은 반도) 위에 자리잡고 있었고, 이 '클라이너 킬'은 그 서쪽의 바다였다. 과거에는 구시기자 남쪽에 홀스텐브뤼케(Holstenbrücke, 다리)라는 다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확장을 했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지금은 과거 지형을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해있다. 현재 이 지역(홀스텐브뤼케)에 대해서는 시에서 도시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한다. 그 부분은 좀 더 조사를 해봐야겠다.


다시 돌아가서 클라이너 킬의 서쪽 양지바른 곳에는 지역은행인 '푀어데 슈파카세'(Förde Sparrkasse)의 본점이 자리잡고 있다. 도심에서는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듯 하다. 암튼 지난 가을 처음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는 보질 못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은행 본점 앞에 천막과 텐트가 쳐져있는데, 지날 때마다 '저건 뭘까? 누가 저기다 천막을 치고 있는걸까?' 이런 궁금증이 생겼었는데, 오늘 드디어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별 특별할 것도 없는데, 그동안 궁금하기는 했어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던 탓일 게다.

그들의 정체는 'OCCUPY KIEL'!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가 작년 9월 중순이었으니까, 이들도 비슷한 시기부터 은행 앞을 점거하고 있는 듯 하다. 내 기억의 조각을 맞춰보아도 대충 그 정도(9월 중순, 말에서 10월 정도)부터 천막을 본 것 같다. 오늘 다시 보았더니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참 절묘하다. 그들의 점거한 곳은 은행 바로 앞에 있는 조형물이 서 있는 잔디밭이다. 은행 옆으로는 시내버스 노선도 많이 지나다니는 주요간선 도로가 지난다. 비탈진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우선 은행 본점이 보이고, 그 앞으로 클라이너 킬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어떻게 보면 도심으로 들어오면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그곳에 천막을 쳤으니 정말 눈에 잘 들어온다. 거기다 버스 정류장까지 바로 옆에 있으니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은 피할 수 가 없다. 그리고 거대 경제 권력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는 멋지게 지어놓은 은행 본점과 그 시스템에 희생당하고 고통받고 있는 대다수의 시민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허름한 천막은 묘한 대비를 이룬다. 그곳을 점유함으로써 그들은 특별히 어떤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무언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 듯 하다. 나만 천막들을 보면서 궁금증을 가지지는 않았을테니 말이다. 이것이 공간의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국 뉴욕에서 시작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은 이곳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바람처럼 대중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나도 함께 그려본다. 마지막으로 그곳에서 보았던 문구를 다시 옮기면서 마무리할까 한다.


Wir sind 99%
Wir sind die Mehrheit und werden nicht länger schweigen!
Wir leiden unter den negativen Auswirkungen unseres Wirtschafts- und Finanzsystems.
Wir sorgen uns um unsere Zukunft, um die Zukunft unserer Kinder und um die Zukunft unserer Erde.
우리는 99% 이다
우리는 다수이고 더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경제, 재정시스템의 효과에 고통받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 우리 아이들의 미래 그리고 우리 지구의 미래를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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