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16.

지리, 지리학...... 그리고 그 위상에 대해서



  요즘은 이유야 어떻든 밤에 좀 생각이 많아지면 잠이 잘 오질 않는다. 새벽 5시를 향해 가고 있는 시간 피곤은 한데 모르겠다. 생각나는 데로 이것 저것 적어보고 잠시 눈을 붙여볼까 한다.

  어릴 때는 그냥 지도 보는 게 좋아서 지리 과목이 좋았고, 그래서 큰 고민 없이 대학도 지리교육과로 진학을 했다. 졸업 후에는 고등학교에서 몇년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지금은 독일에서 공부를 더 해보겠다고 이렇게 팔자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하지 않았던 생각 내지는 고민을 지리를 가르치는 교사로 일을 하면서 하게되었고, 지금은 또 그때는 하지 않았던 것들이 내 머리를 떠나질 않는다. 뚜렷한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점점 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지리, 지리학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왜 공부하려고 하는가?" 답은 아직 모르겠다. 충분히 생산적인 고민이라고 생각은 들지만 쉽게 답을 찾기는 힘들 것 같다.

  앞서 밝힌 질문들과 함께 중요한 화두 "이거 해서 뭘 할 수 있을까?"! 공부해서 돈 많이 벌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애초에 돈이 될만한 학문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적어도 전반적은 흐름이 그렇다는 말이다. 질문 자체는 상당히 포괄적이다. 지리학이란 학문의 사회적 효용도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전공 선택에서도 더 고민이 많이 된다. 이 질문을 좀 좁게 본다면 직업 선택의 폭으로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다. 결국 지리학을 공부한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 활동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사회적인 역할도 결정될테니까.

  한국에서는 지리학 공부 한다고 하면 보통 반응이 상당히 뜨뜨 미지근 하다. 그런데 독일에서 만난 사람들은 지리학 공부한다고 하면 상당히 흥미롭게 생각을 한다. 사회 시스템, 교육 시스템이 다른 데서 오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지리학을 비롯한 기초학문(지리학을 기초학문으로 볼 수 있는가는 논외로 하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저변의 차이는 상당하다. 지리학과의 규모도 크고, 학생들도 학업 후 직업 선택의 폭도 넓어 보인다. 고등학교 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국에는 지리학과와 지리교육과를 다 합쳐도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고, 정원도 역시나 적은 편이었다. 모 대학교 지리교육과는 폐과가 결정되었다는 기사도 보았고, 지금은 상황이 십 수년 전보다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졌을리는 없다. 내가 사범대학을 나온 탓도 있겠지만 직업 선택의 폭도 상당히 제한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이렇게 비교를 하다보면 한국의 상황이 답답할 따름이다.

  내가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 '지리샘 지리선생님'이나 페이스북 '지리사랑방' 그룹에 보면 교육과정 개정과 관련해서, 내지는 임용시험의 TO 등에 관련 기사나 소식이 가끔 올라온다. 또 최근에는 9급 공무원 시험 선택과목 개정과정에서 지리가 빠진데 대해서 몇몇 선생님들께서 우려를 표시한 것도 보았다. 모르겠다. 많은 분들이 고민하고 움직이고는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근무도 해보았고, 지리학을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을 하지만, 나는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다르게 접근을 해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사회적인 인식과 시스템이 변화지 않는데, 지리과목의 수업 시수나 임용 TO 같은 숫자만 가지고 얘기를 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좋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회과('사회과'란 표현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내의 시수 배분이라든지 TO 문제를 보면 답답한 부분이 많다. 그건 지리과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쪽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이런 문제가 붉어지면 사회과 내에서 지리과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 분들은 많이 보았지만, 국어, 영어, 수학에 과도하게 집중된 현재의 초중등 교육의 파행적인 운영에 대해서 지적하시는 분들은 본 적이 없다. 그런 분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직 그런 의견을 접해본 적은 없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들(과목) 중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최근의 다른 예로 체육 수업 시수와 관련한 것만 봐도 그렇다. 위로부터의 변화가 바람직한가에 대한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체육을 적정한 수준으로 하는 것은 아이들의 발달을 당연한 일이고 환영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체육 수업이 늘면 다른 교과 수업이 줄 수밖에 없고, 그럼 사회과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입지가 좁은 지리과는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내가 가진 파이를 남에게 빼앗기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가 있는 파이의 배분 시스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하지 않겠는가. 거대한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고, 단위학교의 현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멀리 내다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공부하는 학문이 '그들만의 리그'에 머무는 마이너 학문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변화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다. 모 선생님의 말씀처럼 지리학 공부한 사람 중에서도 스타가 나와야 한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이왕 나올거면 한 명이 아니라 여럿 나왔으면 좋겠다. 어디에 계신지 모를 그 분은 빨리 정체를 드러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면 지리학에 대한 저변도 넓어지고, 지리학 공부한 사람들이 할 일도 많아지겠지. 열정을 가지고 현직에서 아이들을 지도하시는 지리 선생님들이 많을 걸로 알고 있다. 그런 분들의 노력도 분명히 좋은 결실을 맺을 날이 올거라고 생각한다. 지난 여름 후배에게 들었던 얘기가 생각난다. 지리 교사가 지리학과나 지리교육과로 진학하고 싶어하는 제자를 만류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다니...... 정말 기뻐해야할 일인데 제자를 생각해서 만류해야하는 그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씁쓸할 따름이다. 적어도 이런 일은 없었으면 한다. 가까운 미래가 될지, 조금 먼 미래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다시 돌아갈 때 쯤엔 지금보다 지리하는 사람들도 어깨펴고 살 수 있기를 바라본다.

댓글 2개:

  1. 국영수 중심교육에 대해서 지적하는 분이 안보이는건 그 커뮤니티의 주제가 '교육일반'이 아니고 '지리'이기 때문이지 않나 생각되네요. 국영수 중심이 심해진 미래형 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은 이미 전교조나 많은 언론에서도 제기된 문제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엔 지리교사 TO 증대, 공무원시험에 지리 추가라는 것들이 단지 파이 뺏길까봐 노심초사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사람들이 지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계기가 될 것이고(특히 공무원시험), 그러므로 이는 지리에 대한 입지를 조금씩 넓힐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에 들어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작할땐 별거 아니라고 생각될지라도, 작은 움직임이 모인다면 점점 일반 사람들이 지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지리하는 사람들이 어깨펴는 날도 다가올지도 모르죠. 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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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시고, 댓글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리교사 TO나 공무원 시험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노력에 대해서는 저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노력하시는 분들을 응원하는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가 글에서 밝히 국영수 중심의 현 교육체계의 문제는 모든 선생님들이 공감하실거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강한 연대를 통해서 멀리, 그리고 큰 그림을 그리는 작업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부분은 아직은 미약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저변이 취약하다는 점인데, 이점은 초중등교육에서의 지리교육의 확대, 공무원 시험에 지리과목 추가 등으로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리학 하는 사람들도 사회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지리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그에 대해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더불어 학문적인 성과를 대중에게 알리는 작업도 같이 이루어주야 할 것입니다.
      교육현장에서 지리 선생님들과 각 전공분야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계시는 분들의 노력은 언젠가는 좋은 결실을 맺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분들을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댓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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