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31.

북해에 떠있는 사막 쥘트(Sylt)에서의 하루 1


9월 말. 독일 날씨 답지 않게 화창한 날이 이어진다. 거기다 10월 3일 독일 재통일 기념일이 다가온다. 혼자 사는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사흘의 연휴다. 그래서 나도 하루 어디를 다녀와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언제나 그러했듯 결정은 순간이고, 준비랄 것도 별로 없다. 애초에 목적지는 독일의 북쪽 국경도시 플렌스부르크(Flensburg)였다. 제 시간에 일어나기만 했으면 그리로 갔겠지만, 어디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만 흘러가던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플렌스부르크행 기차를 놓쳤지만(물론 다음 기차를 타도 됐지만 이미 김 빠진 맥주가 됐다), 그러면 어떤가 다른 데로 가면 되지. 그래서 선택한 곳은 북해에 있는 섬 쥘트(Sylt)였다. 몇일 전 독일의 가장 북쪽 지역 중에서 어디를 갈까 고민을 면서 여기, 저기 찾아본 것이 다행이었다. 애초 세웠던 계획은 물 건너 갔지만 오히려 의외의 장소가 큰 감동으로 가다왔다.

짙은 안개 위로 아침 해가 뜬다
5시 56분 아직 밖은 깜깜하지만 기차는 후숨(Husum)으로 출발한다. 토요일 새벽 이른 시간이지만 기차 안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다. 적막할 수도 있는 새벽을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가볍게 해준다. 렌스부르크(Rensburg)를 지나면서 조금씩 바같은 밝아오기 시작한다. 짙은 안개로 아침 노을은 진한 주황색이 아니라 옅은 분홍색을 보인다. 짙은 안개로 창밖 수십 미터도 구분이 잘 되지 않는 탓에 기차는 철도 건널목을 지날 때마다 경적을 울린다. 후숨에 거의 도착할 때쯤 해가 안개 위로 해가 뜨면서 조금씩 짙은 안개도 사라지고, 시야도 조금씩 트이기 시작한다. 두터운 안개 위로 수십 대의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보인다. 내가 바람의 고장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을 달리고 있음을 실감한다.
7시 35분 후숨에 도착해서 쥘트로 가는 기차를 기다린다. 독일의 북해 연안에서 네덜란드의 일부 해안 지역에는 프리시안어(Friesisch)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독일에서는 독일어(Hochdeutsch) 외에도 프리시안어, 덴마크어, 저지 독일어(Niederdeutsch 또는 Plattdeutsch) 등의 소수언어도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다. 그 중 슐레스비흐-홀슈타인 지역에는 북해 해안지역에 프리시안어, 덴마크와의 국경 지역에 덴마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이들을 위해 관청에서는 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예를 들면 통역 서비스 같은 것들을 제공해야 한다고 한다. 후숨역 승강장에는 이 지역이 프리시안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임을 알리는 안내판도 설치되어 있다. 유럽의 상황과 비교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겠지만 한국의 표준어 정책과 사투리 문제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자동차 전용 열차
후숨에서 8시가 조금 안되어서 드디어 쥘트로 가는 기차에 다시 올랐다. 쥘트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육지에서 쥘트로 가는 방법은 기차를 이용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물론 쥘트에 작은 공항도 있지만 대형 항공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정도는 못되고, 항구가 있지만 그 역시 요트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사실상 이용할 일은 없을 것이다. 쥘트는 1927년 완공된 힌덴부르크담(힌덴부르크 제방, Hindenburgdamm)을 통해서 육지와 연결되어 있는데, 자동차를 위한 도로는 따로 없다. 그래서 자동차는 니뷜(Niebüll)에서 자동차 전용열차를 이용해야 한다. 연휴라 그런지 니뷜에서 사람들이 엄청나게 타는 바람에 기차 안은 금세 만원이다. 이정도로 찾는 사람이 많으면 제방을 넓히거나 다리를 놓을 만도 한데, 그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더 해보면, 자동차를 이용한 접근이 편리해 진다면 오히려 희소성이 떨어질 수도 있고,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그리 좋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 성산포와 우도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고 상상을 해보면....... 절대로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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