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21.

게임 대항해시대와 메르카토르의 세계지도

메르카토르의 세계지도 (1569) (제공 : P. Mesenburg)


얼마 전 한국을 '스타크레프트 좀비'라고 표기한 세계지도를 본 적이 있다.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써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한국사람들은 컴퓨터게임을 많이 하는 것 같기는 하다. 내가 대학 입학 하던 때쯤부터 스타크레프트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니 참 대단하다 싶기도 하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도 중학교 때는 학교 수업만 끝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곤 했다. 그때 했던 게임들은 지금은 게임의 전설이라고도 하는 '삼국지3'와 '대항해시대2'. 그 외에도 몇몇 게임들을 즐기기는 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다. '삼국지3'와 '대항해시대2'는 나처럼 예전의 향수를 그리워하며 다시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연배라면 다들 '아! 그 게임 나도 재밌게 했었는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얼마전 '대항해시대2'를 다시 다운받아서 깔아서 해보았다. 십수년 전 깨알같이 기억한 공략집 때문에 게임 진행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대항해시대2의 여섯 주인공
게임의 시작은 1522년이다. 전편인 '대항해시대1'의 시대배경이 대항해시대가 개막하는 15세기 후반이었다면, '대항해시대2'는 콜롬버스, 바소쿠 다 가마, 마젤란 같은 유명한 항해가 들을 잊는 세대인 셈이다. 스토리 구성도 탄탄하다. 대항해시대 초기 대양항해를 주도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인 물론 후발주자인 영국, 네덜란드, 그리고 이슬람 세력의 확장과 지중해를 통한 무역의 쇠퇴로 어려움을 겪는 이탈리아까지 6명의 주인공은 당시의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지리학자 에르네스토 로페즈
오랜만에 게임을 다시 시작하면서는 네덜란드인 에르네스토를 선택했다. 23살의 젊은 지리학자. 가슴이 뛴다. 에르네스토의 임무는 지도학자 메르카토르의 부탁으로 세계를 탐험하고 지도를 완성하는 것이다. 중학교 3학년의 나는 그저 열심히 배를 몰아서 지도를 완성하는 데만 열중했었는데, 지금은 세삼 여러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우선 지도학자 메르카토르! 그의 세계지도는 당대의 지리정보의 정수인 동시에 유럽의 지리적 확장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가 고안한 원통도법은 여전히 세계지도 제작에 이용되고 있고, 메르카토르도법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문제는 1512년 출생인 메르카토르가 암스테르담에서 지도학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 하면서 그런 거 하나 하나에 신경 쓸 필요야 없지만 그래도 지리학 공부하는 입장에서 세삼스래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다.

게임에 등장하는 메르카토르
지난 3월 말 도르트문트(Dortmund)에서 열리고 있는 메르카토르 탄생 500주년 특별 전시회에서 복사본이기는 했지만 메르카토르의 세계지도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세계지도에 대한 강연도 들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지리학사에 관심이 있기는 하지만 대학 때도 지리학사 과목을 수강하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별다른 지식은 없었다. 서울대 규장각 홈페이지에서 우리나라의 고지도는 볼 수 있기 때문에 수업을 하면서도 활용을 하곤 했었는데, 유럽의 지도는 지리부도에 나오는 것들 외에는 사실 볼 기회가 없었는데 좋은 기회였다.

메르카토르의 세계지도와 현재의 세계지도 비교 (제공 : P. Mesenburg)
1569년 메르카토르가 발표한 세계지도와 현재의 세계지도를 비교해 보면 이 지도가 얼마나 정교한지를 알 수 있다.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의 대서양 연안은 비교적 윤곽이니 위치가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유럽에서 아메리카에 이르는 직선항로의 경우 실제와 비교할 경우 그 정확도가 대단하다. 특히 스페인 남부의 카디즈(Cadiz)에서 도미니카 공화국이 위치한 히스파니올라 섬까지는 그 오차가 불과 14km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말라가(Malaga)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항로는 실제보다 1000km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지중해 지역와 흑해 지역이 부정확한 것은 메르카토르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를 참고로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지도는 당시까지 수집한 지리 정보의 총합일 뿐 아니라, 지도제작에 필요한 수학을 비롯한 여러 과학과 기술의 결정체였다. 한국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분야인데, 문화정보학(Kulturinformatik)이라는 분야가 있다고 한다. 지리학과 관련해서 본다면 고지도를 복원하고, 그 안에 포함된 지리정보에 대해서 분석하는 것이 문화정보학 분야에 해당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이 글에 삽입한 메르카토르지도의 파일을 제공해주신 페터 메젠부르크 교수님의 홈페이지를 소개하고 마무리 할까 한다.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http://www.mesenburg.de/home_Untersuchung_alter_Karten.htm

댓글 4개:

  1. 제가 비슷한 연배인지는 모르겠지만ㅎㅎ 저를 이 길로 이끈 요인중에 하나가 바로 대항해시대입니다. 초딩 고학년~고딩때까지는 틈만나면 했죠.. (전 2,3 다 했었네요) 조안페레로 시나리오에 '프레스터 존'이 나오는데, 그 사람이 누군지, 그리고 그것의 의미가 대항해시대에 있어서 무엇인지를 안지는 얼마 되지 않았죠ㅎ 실제로는 에르네스트 로페즈로 플레이를 많이 했는데요(전쟁하는게 귀찮고 돌아다니는게 더 좋아서 ㅋㅋ) 지리적 의미가 정말 많은 게임이죠.. 나라나 도시, 유적 위치는 말할것도 없고, 열대폭풍이 어느 지역에서 많이 일어나는지도 게임을 통해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던거 같네요. 물론 말씀하신데로 게임의 한계도 존재하지만 ㅎㅎ 게임의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기보다, 게임에 재현된 지리를 비판적으로 생각해보는 자체가 지리적 사고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ㅎ

    3같은 경우는 2보다 재미가 조금 덜하긴 하지만 육지를 걸어다닐수 있다는 점이 큰 메리트이구요. 캐릭터도 포르투갈, 에스파냐 두 나라만 있어서 '15~16세기 대항해시대'에는 조금 더 어울렸던거 같아요. 해당 년도에 맞춰서 이벤트가 나타나기도 하고(1492년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해버리니깐, 그 보다 먼저 가야되요)

    몇년전에 '10년을 기다린 게임'이라는 슬로건으로 대항해시대 온라인이 나왔는데, 기대에 너무 못미쳤던 기억도 나네요~ 엄청 느려서 퀘스트 하나 하는데 한시간 걸리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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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항해시대가 사람 여럿 이렇게 만들었구만 ㅎㅎ 이 게임 하면서 처음으로 내 돈주고 지도를 샀었지. 게임 하면서 방바닥에 세계지도 펼쳐놓고, 옆에는 지리부도 펴놓고..... 그때가 좋았지.게임을 얼마나 열심히 했으면 보물지도도 대충 보면 어디 쯤인지 알 수 있었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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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삼국지 얘기도 하면 ㅋㅋ 삼국지는 5를 주로 했는데요.. 삼국지와 지리를 연결시키는것도 재밌죠. 예를들어 오나라 영토인 '강남'지역은 당시에 개간이 거의 되지 않아서, 생산력이 지금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낮았고.. 촉은 뭐 영토 대부분이 산골이니.. 당시 지리적조건을 고려한 생산력을 추산하면 위, 촉, 오가 90:2:8정도 될꺼라는 얘기도 들었네요 ㅎㅎ 특히 촉 같은 산골에서 군사, 군량이 계속 샘솟는건 정말 아이러니라고 ㅎㅎ 물론 이게 위가 반드시 통일한다는 근거가 될수는 없는게,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원인을 전술적 측면보다 남쪽지역 기후에 적응한 병사가 거의 없었다는 것으로 돌리기도 하죠.(이게 당시 강남이 저개발지역이었다는 근거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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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촉나라 같은 경우는 산세가 험하기는 해도 중심이 되는 지역이 지금의 쓰촨지역인 걸 감안해보면 역사적 사실을 떠나서 제갈량이 그 지역으로 선택할만한 매력은 충분하지 않았을라. 물론 지금 관점으로 볼 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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