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6.

산업화 시대의 눈으로 바라보는 탈산업 시대의 도시 미학(비평)

도르트문트(Dortmund)의 도심

어젯 밤에도 잠이 잘 안와서 이것 저것 유튜브를 뒤지다가 재미있는 제목의 동영상을 보게되었다. 한국경제 논설위원 정재규씨의 '정재규 TV' 체널의 '도시 미학 산책'이 그것이다. 일단 제목이 그럴 듯 해서 클릭을 했다. 오늘은 거기에 대해서 비평을 해볼까 한다.

정재규 논설위원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그의 성향은 파악할 수 있었다. 이른바 보수논객의 입장에서 보는 현재의 서울시- 더 정확히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그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의 결론은 '도시는 문명과 발전의 상징이다. 그런데 박원순 시장의 도시 균형 발전론은 도시를 오히려 후퇴시킨다.'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산업화 시대의 눈으로 보는 도시 발전론이었다.

박 시장의 압구정 초고층 아파트 취소 등을 두고 "박 시장은 높이에 대한 알러지가 있는 것 같다."라고 평가한다. 초고층 아파트를 짓고 주변을 공원과 체육시설로 만들겠다는 데 왜 반대를 하냐는 것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지만 가장 핵심은 이 부분인 것 같다. 나는 묻고싶다. 그러면 초고층 빌딩의 숲은 과연 아름다운가?

제목처럼 '미학'이라고 하는 철학적 사유를 들어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발시대, 산업화시대의 도시 발전론이었다. 현재는 도시라는 공간이 인간 생활에서 훨씬 중요한 곳이 되었다. 도시화율로 본다면 대한민국은 유럽이나 미국 등과 비슷한 수준의 도시화를 이루어졌다. 그것도 아주 빠른 시간에. 이점은 사실이다. 그는 '도시화 자체가 문명의 상징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문명화를 빠르게 이룩한 국가이다. 그가 말하는 문명화라는 것은 산업과 경제의 발달 정도로 이해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보면 분명히 불과 수십년 사이에 장족의 발전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발전의 기조와 속도가 아직도 유효한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도시로의) 밀집 자체에서 오는 폭발력을 역설하고 밀집이 발전의 에너지라고 피력하지만, 현재 한국의 대도시가 고민해야할 문제는 '집적 이익'이 아니라 '집적 불이익'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이민자들이 뉴욕 항구에서 그랬듯이시골뜨기들은 도회에서의 첫날 밤을 자유의 숨을 쉬며 뒤척인다도시에는 허드랫 일감이라도 있다. 누구나 자립할 있고, 계급의 굴종이 없으며, 전통 사회가 해체되고 새로운 가치관이 태어나는 곳이다. 그래서 젋은 사람들은 누구나 농촌에서 벗어나 도시로 탈출하려고 한다. 젊은이들에게는 도회지의 익명성 조차 가슴을 설레게 한다. .... 한국이 이만큼 살게된 것은 가난과 체념이 지배하던 농촌을 떠나 떨리는 가슴으로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높은 생산성 때문이다.
-4월 3일자 한국경제 정규재 칼럼 중에서

내 부모님 세대라면 어느 정도 비슷한 감성을 공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2012년 현재의 대한민국은 이미 도시화의 종착단계에 있다. 더이상 과거처럼 폭발적인 인구이동은 없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과거 산업화 시대의 도시로의 이주가 그의 주장처럼 과연 희망을 쫓아나서는 적극적인 것이었는지, 아니면 과거 농촌의 상황이 인구를 밀어내는 어떤 작용을 했고, 그에 따라 마지못한 선택이었는지는 다시 생각을 해봐야 할 문제이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산업화와 도시화는 그 궤를 같이해왔다. 현재는 대한민국도 산업화를 넘어 탈산업화로 가고있는 마당에 아직도 산업화 시대의 시각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도시의 초고층 빌딩이 도시화를 또는 그냥 간단히 대도시를 상징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도시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풍요로운 삶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압구정에 초고층 아파트를 지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살 수 있는가? 건물을 초고층을 뽑아서 올리고, 주변에 공원과 녹지를 만들면 도시민 전체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가? 그곳에 살 수 있는 소수의 삶의 질은 높아질지 모르지만, 서울 전체로 본다면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도시의 경관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서울은 강과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도시이다. 한강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높은 건물로 양쪽으로 벽을 쳐놓은 한강은 그곳에서 한강을 보는 이들에게는 아름다울지는 모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주변의 건물의 벽이 한강과 주변 산이 어우러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초고층 건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벗어나고 싶어한다.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많이 사람들이 선뜻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럴 수 있는 여건이 못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좌익,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원형적인 생각이라고 비판한다. '도시화=문명화'라는 그의 공식에 따르면 도시를 떠나 촌락으로 돌아가는 것은 과거로의 회귀, 현재의 것을 포기하고 과거로 후퇴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역도시화는 고도로 도시화된 사회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임을 모르는 것이다. 역도시화는 반문명화는 아닐텐데 말이다.

도시문제는 하나의 도시 내부에 존재하는 문제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교통, 주거, 환경 등 다양한 대도시의 내부 문제 뿐만이 아니라, 전체 도시체계의 관점에서 보는 도시 간 문제도 역시 중요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도시 문제는 이 두가지를 함께 고민해야 보다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과도한 집적은 도시 내부 문제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도시 간 격차도 심화시키고 있다. 정규재 논설위원의 표현처럼 현재 약 5% 수준인 도시적인 토지이용 비율을 10%, 20%로 끌어올린다면 그건 상당한 변화요 발전일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서 (초고층 빌딩의 건설 등을 통한) 도시의 수직적인 발달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재의 너무 밀집된 대도시의 인구를 분산하고 이를 통해서 다른 지역을 개발한다면 훨씬 생산적이지 않을까? 이렇게 보면 전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은 어떻게 보면 시대적인 요구였을지도 모른다. 균형을 통한 지역 간 상화교류는 새로운 발전의 동력이 되지 않겠는가!

정규재 위원이 말하는 것처럼 현재의 도시는 아주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유기체와 같다. 그래서 도시학이라는 분야는 대표적인 다양한 분야의 공동연구가 필요한 학문분야이다. 나는 도시를 비빔밥에 비유하고 싶다. 여러 가지 고명의 색감이 조화를 이루고 고추장과 참기름이 적당히 들어간 것이 가장 맛있는 비빔밥일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한 가지 고명만 넣어서는 맛도 떨어지고 색감도 덜하다. 매운 맛이 좋다고, 참기름의 고소함이 좋다고 너무 많이 넣는 것도 좋은 선택이 아니다. 조화와 균형, 그것이 비빔밥의 미학이자 도시의 미학이 아닐까? 토지생산성과 가격이라는 경제적인 가치뿐만이 아니라 도시의 발전 페러다임에서 고려해야할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시대가 변하면 발전의 페러다임도 변하기 마련이다. 과거에는 그가 가진 설계도가 좋은 것이었을 지 모르지만, 이제는 새로운 설계도를 그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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