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6.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순례길, 시작과 끝 그리고 콤포스텔라

나는 지난 1월 26일 Saint-Jean-Pied-de-Port(이하 생장)을 출발하여 2월 24일 Santiago de Compostela(이하 산티아고)에 도착하기까지 30일 동안 775km의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이하 카미노)를 걸었다. 정확히는 프랑스길을 걸었다. 유럽 곳곳에서 출발하는 카미노는 산티아고를 향해 모여든다. 수많은 길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걷는다는 순례길이 프랑스길이다.

계절과 날씨에 대해서는 따로 얘기하기로 하겠다. 우선 카미노의(정확히는 프랑스길)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받게되는 콤포스텔라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한다.

보통 프랑스길이라고 하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생장에서 시작해서 산티아고에서 끝나는 길을 의미한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길이라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쉽게 여행안내서를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안내서에서 전체 일정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정보가 얼마나 최신의 것인지가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또 순례자 협회를 비롯해서 기사, 블로그 등을 통해서 프랑스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비수기인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카미노를 걷는 한국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유럽사람들을 제외하면 그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지난 겨울에는(이제는 봄이니까) 스페인을 제외하면 한국사람들이 가장 많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겨울에 한국사람들이 왜 많은지 물었지만, 나도 그 이유는 모른다.

내가 만났거나 전해들은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생장에서 일정을 시작한다. 대부분의 안내서에서도 생장에서 출발하는 일정을 소개한다. 생장에서 출발하여 프랑스길 전체를 걷는 데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보통 4주에서 5주 정도의 기간을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하게 된다. 나는 전체 코스를 30일(휴식 1일 포함)에 소화했으니 평균 정도에 해당한다. 걸음이 빠르고 체력이 좋은 사람들은 하루 40km 이상을 매일 걷는 사람들도 있다. 어찌되었든 전체 코스를 걷기 위해서 적어도 한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스페인까지 이동하는 시간, 그리고 돌아오는 시간까지 계산한다면 며칠의 여유가 더 필요하다. 한국사람 중에서 카미노를 위해서 한달 이상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텐데도 많은 사람이 이 길을 걷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대학생이라면 방학을 이용한다고 하지만 직장인의 경우에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카미노는 그 목적지가 산티아고라는 사실을 빼면 사실 아주 다양하다. 프랑스길을 걷는다고 해서 꼭 생장에서 시작해야할 이유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스나 레온에서 출발하곤 한다. 순례자 증명서인 콤포스텔라를 받기 위해서는 산티아고에서 적어도 1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순례를 시작해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리아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산티아고 가까워질수록 길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많아진다. 생장에서 출발하든, 사리아에서 출발하든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소에서 발급하는 콤포스텔라는 같다. 물론 3유로를 내고 걸었던 거리를 써주는 다른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지만 그건 개인의 선택이다. 그런데 카미노에서 만났거나, 전해들었던 한국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생장에서 출발한다. 멀리서 와서 길을 걷는데 시간에 쫓기는 경우도 보았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로 중간에 버스나 기차를 이용해서 이동하는 경우도 많았다. 개인의 선택일 뿐 버스나 기차를 타는 것이 문제될 건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일정이 그리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생장에서 출발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본다. 물론 전체 코스를 모두 걸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다. 자신의 일정을 고려해서 어디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 결정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또 무리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전체 코스를 걷기 위해서 무리를 하는 경우도 보았다. 젊은 패기로 도전한다면 말릴 이유는 없지만, 이 또한 추천하고싶진 않다. 내 몸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 아니다. 카미노를 걷고 탈이 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좋은 길을 걷고 건강을 해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는 평균적인 수준을 기준으로 할 때 순수하게 카미노를 걷는 데에 쓸 수 있는 시간이 30일 정도 된다면 생장에서 출발해서 전체 코스를 소화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3주 정도라면 부르고스, 2주라면 레온, 1주라면 사리아에서 출발할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콤포스텔라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또한 개인의 선택이다. 산티아고 5km 앞까지 걸어왔다가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 시내를 스쳐지나며 대성당을 향해서 손가락 욕을 날리고 돌아갔다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같이 걸었던 분들이 해주셨다. 콤포스텔라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면 카미노를 걸으며 길을 음미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카미노는 경주가 아니다. 빨리 산타아고에 들어간다고 특별한 것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속도에 맞게 안전하게 걷고 길 위에서 만나는 것을 느끼고 즐기는 여유가 카미노에서는 더 필요하다 생각한다.

생장에서 출발해서 775km를 걸었다고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카미노에서 그 정도 경험은 대단한 자랑거리가 아니란 점을 미리 알려둔다. 하루 하루 걸어 산티아고로 갈 수 있다면 감사한 것이고, 그렇게 걷고 있는 당신은 스스로 대견하게 여겨도 좋을 것이다. 그 길을 걸을 당신을 위해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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