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10.

좋은 침식 그리고 자연보호를 위한 수익자 부담원칙

쥘트의 아름다운 사빈과 사구

오늘은 쥘트 답사에서 동행하신 교수님께서 던지신 흥미로운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까 한다. 제목이 좀 모호한데 두 질문은 '무너지는 해안절벽은 보호해야 하는가?' 그리고 '자연보호도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야 하는가?' 이렇게 나눠볼 수 있겠다. 찬찬히 한 번 생각을 해보자.

쥘트의 서쪽 해안, 그러니까 북해에 완전히 개방되어 있는 해안은 크게 사빈과 사빈과 연결된 사구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이미 앞 선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섬의 중심부는 해발 약 20m 높이의 빙하기 퇴적물(모레인)이 기반을 이루고 있다. 특히 캄펜의 Rotes Kliff(붉은 절벽)는 사빈의 모래색과도 대조를 이루면서 상당히 인상적인 경관을 이루고 있다. 이 붉은 색의  절벽은 생성 연대도 오래되지 않아 상당히 무를 뿐더러 후빙기 해수면 상승과 함께 계속 바다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동쪽 해안, 즉 발트해 해안에도 이와 같은 해안절벽을 볼 수 있다. 차이라고 한다면 발트해 해안의 절벽은 마지막 빙하기 때 형성된 것이고, 쥘트의 절벽은 그보다 앞선 빙하기 때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생성시기를 제외하면 경관도 비슷하고, 현재 지속적으로 침식에 의해서 후퇴하고 있다는 지형 변화의 양상도 비슷하다. 이런 해안절벽은 과거에는 항해자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표식이었고, 현재에도 그 자체로 상당히 인상적인 자연경관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해안절벽이 무너지는 건 막아야 할까? 그래 이건 이 지역의 중요한 자연경관이니까, 그리고 보기에도 좋으니까 지켜야지! 나도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주정부에서는 사구나 사빈 보호에는 엄청난 비용을 지출하고, 지속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데 비해서 해안절벽이 침식되는 것은 막지 않는다고 한다. 왜? 매년 수십 센치미터에서 심할경우 수 미터 씩 해안절벽이 무너진다는데 주정부는 그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 언뜻 생각해서는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해안절벽을 방치(?)하는 이유는 이런 해안절벽이 사빈에 모래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해안의 아름다운 해수욕장(사빈)은 동해로 흘러드는 강들이 부지런히 모래를 운반한 결과물이다. 그에 비해 쥘트의 수십 킬로미터의 사빈은 모래를 공급해 주는 강이 없다. 그럼 그 많은 모래는 해안 침식물이란 얘기가 될텐데, 절벽이 무너지는 걸 막아버리면, 가령 인공구조물을 절벽 앞에 설치 한다거나 할 경우, 절벽은 지킬 수 있겠지만 사빈은 주요 모래 공급원이 끊기게 되니까 오히려 더 심하게 침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침식'이라는 단어는 보통 부정적으로 인식을 하는 데,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씀하셨다.

두 번째 질문. 앞 선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쥘트에서는 매년 연안 바닥의 모래를 퍼 올려서 사빈에 공급하고 있다. 그 사업은 주정부가 진행하는 것으로, 매년 적게는 수입억원에서 많게는 백억 이상의 예산을 투입되는 큰 사업이다. 비용은 어찌됐든 일단 다른 방법 -테트라포트, 그로인 설치 등- 보다는 사빈보호에 효과를 보고있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돈이다. 결국 주정부가 집행하는 비용은 시민의 세금이다. 우선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는 부유한 주가 아니다.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것도 주정부의 역할이라고 본다면 여기에 세금을 지출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익은 누가 보는 가가 문제다. 이 섬 쥘트는 연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독일에서도 손꼽히는 휴양지고, 주민의 상당수도 일년에 몇 달만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주정부 예산을 투입해서 지키고 있는 아름다운 사빈은 관광객들이 그 혜택을 주로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들은 과연 일년에 몇 번이나 자신들의 세금으로 지킨 모래를 밟아볼까?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해보면 좀 거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북해 연안의 섬에도 사빈이 있고, 발트해에도 사빈이 있다. 그리고 그 사빈들 역시 해안침식이 큰 문제다. 그런데 왜 이곳 쥘트에는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서 사빈을 지킬까? 찬찬히 따지고 들면 문제가 있어보인다. 일단 발트해 쪽은 모래를 퍼 올리고 싶어도 모래가 없다고 한다. 그러니 그쪽은 논외로 하더라도, 당장 쥘트의 바로 남쪽에 위치한 섬 암룸(Amrum)의 경우에도 사빈, 사구가 있고 모레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등 기본적인 자연조건은 비슷한데 왜 예산지원을 받지 못할까? 쥘트가 더 아름다워서? 아름답다는 건 각자 기준이 다를 수 있으니 당연히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럼 결론은 결국 정치적인 부분과 연결될 것이다. 자연환경을 지키자는 대명제는 동의를 하지만, 세세하게 따지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환경보호가 시대의 화두임은 분명하지만 그 길은 참으로 멀기도 하고 복잡한 미로 같아 보인다. 당신이라면 쥘트의 사빈을 지키는데 들어가는 세금을 기꺼이 부담하겠는가? 간단히 대답하기는 힘든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교수님께서 해주신 설명 중에서 흥미로운 한 가지를 소개하고 마무리 할까한다. 위의 사진을 보면 사구가 바다쪽으로 튀어나와있는 부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멋진 집 한채. 이 집은 도이체 방크(Deutsche Bank)에서 소유하고 있다. 이 집처럼 바다를 바로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지어진 집들은 상당수가 해안침식으로 피해를 보았다는데, 이 집만은 멀쩡하다. 사구가 다른 곳보다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것도 돈 많은 은행에서 자기들 돈을 들여서 집 앞의 사구가 침식되는 걸 막는 어떤 조치를 했단다. 그래서 그 부분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침식이 많이 진행되었고, 해안선도 이상하게 변했다. 돈 많은 은행에서 직접 돈을 들여서 재산을 보호하겠다는데 말릴 수는 없겠지만, 해안의 전체적인 경관을 고려한다면 이 역시 생각을 해보아야할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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