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30.

자전거는 달리고 싶다!

자동차도로와 자전거도로
확실히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대학교 3학년, 그러니까 2003년 내가 자전거를 처음 샀을 당시에는 내 주위에는 자전거를 가진 사람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내 자전거 가격이 30만원 정도였는데, 주위에서는 '무슨 자전거가 30만원씩이냐 하냐'며 핀잔을 주곤했다. 그러던 사람들 중에 지금은 훨씬 비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이들도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전거가 생활에 점점 녹아드는 듯 하다. 그래서 오늘은 자전거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 킬은 독일에서도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로 유명하다. ADFC(독일자전거연맹)과 ADAC(독일자동차연맹)의 발표에 따르면 킬은 뮌스터에 이어 독일에서 두번째로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라고 한다. 또 2008년 드레스덴 공과대학의 한 연구팀의 발표를 따르면 킬의 전체 길 중에서 21%를 자전거가 이용하고 있고, 자전거 이용자들이 하루에 달리는 누적거리가 50만 km 이상이라고 한다. 나도 베를린에서 자전거를 한 대 사서 지금까지 잘 타고 다니고 있다. 나도 킬의 수많은 자전거 이용자들 중 한 명이다.

움슈타이거
베를린에서는 한 동안 자전거를 타고 어학원을 다니곤 했었다. 기숙사에서 어학원까지는 버스로는 50분 정도, 자전거로는 40분 정도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베를린은 한국 도시들과 비교를 해본다면 자전거 도로가 잘 가춰진 편이다. 하지만 킬과 비교하면 베를린의 자전거도로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베를린에서 자전거를 타고 어학원 통학을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팔꿈치가 살짝 아프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울퉁불퉁한 자전거도로 탓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도시가 크고, 그러니 당연히 관리에 많은 예산이 드는 문제가 있겠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베를린과 비교해 보면 킬은 자전거 타기에 참 좋은 도시다. (적어도 내가 본) 모든 간선도로를 따라서는 자전거 도로가 설치되어 있고, 이면도로 중에는 자전거가 자동차나 오토바이보다 통행의 우선권을 가지는 도로도 있다. 그리고 차도와 분리된 자전거도로가 없는 곳에서는 차량 속도를 30km/h로 제한을 한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당연히 자전거를 세워둘 곳도 많아야 한다. 간선도로 곳곳에는 이런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자전거를 세워둘 수 있는 곳도 많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중앙역 옆에 마련된 움슈타이거(Umsteiger)라고 하는 시설은 인상적이다. 이곳에는 실내에 자전거 600대를 동시에 보관할 수 있다. 또 자전거 수리소는 물론, 여행자들을 위해서 자전거 대여소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학생식당 앞에 세워진 자전거
킬의 인구는 약 24만 명. 킬 시민들이 자전거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고, 얼마나 이용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다. 하지만 참고할 만한 자료는 있다. 전체 인구의 12.6%가(약 3만 명) 대학생이고, 복수응답이기는 하겠지만 그 중 52.7%가 자전거를 이용해서 통학을 한다고 한다.(CHE Hochschulranking 2012/13) 이것은 적어도 대학생의 절반 이상은 자전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드레스덴 공과대학 연구팀의 자료를 보자. 한 명의 자전거 이용자가 매일 20 km 씩 달란다고 가정하면 2만 5천 명 이상이 자전거를 매일 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전거를 이용해서 통근이나 통학을 하는 사람들은 자전거를 정기적으로, 또 비교적 먼 거리를 자전거를 이용해서 움직이는 편일 것이다. 그에 비해 장을 보러 간다거나 주말에 여가 이용하는 등의 비정기적이고 가까운 거리 이동에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생각을 해본다면 자전거를 이용하는 인구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킬의 생활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이용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잘 정비된 자전거 도로도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외에도 도시의 자연조건과 도시의 내부 구조나 형태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킬은 좁고 긴 만의 양안을 따라 도시가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고 있고, 만의 가장 안쪽에 도심이 위치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인구규모가 20만이 넘으면 대도시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에 띄는 부도심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도시 규모가 크지는 않다. 운하(북해와 발트해를 연결하는 킬운하)의 북쪽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가지가 도심에서 5 km 반경 내에 들어온다. 시민들의 도시내 이동은 주거지와 도심 사이에서 주로 이루어진다고 본다면 이동 반경이 그리 넓지 않다. 또 바다로 인해 도시의 동쪽과 서쪽은 생활권이 사실상 구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시민들의 생활반경이 대체로 수 킬로미터 안에서 결정된다고 본다면 자전거는 상당히 유용한 이동수단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여건 외에 대중교통인 버스노선의 구성도 자전거 이용에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킬의 버스노선은 중앙역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버스를 이용할 경우 외곽과 도심 사이의 이동은 비교적 수월하지만, 다른 방향은 이동이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베를린과 같은 대도시와 비교해 본다면 노선의 수나 배차 간격, 운행시간 등은 도시의 규모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점이 있다. 자전거는 이런 대중교통체계의 문제점을 잘 보완해주는 이동수단이다. 이와 같이 킬에서 - 비단 킬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독일 도시에서 - 자전거는 대중교통을 보완하는 훌륭한 교통수단이다.

자전거도로
그럼 다시 시선을 돌려보자. 2년 쯤 전부터 어머니께서 자전거를 본격으로 타기 시작하셨다. 처음 시작은 평소 무릎이 안좋으셔서 운동을 목적으로 타기시작하셨는데, 지난 여름부터는 운동은 물론 출퇴근 때도 자전거를 이용하신다. 그렇기는 해도 여전히 운동이 주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아직 그 수는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주요 목적은 여가시간을 보내는 데 있는 것 같다. 부산의 경우 광안리 해수욕장과 해운대 해수욕장 사이, 그리고 수영강과 온천천 강변을 따라서 자전거 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이런 곳에서는 옷을 잘 갖춰 입고 줄 지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시내에서는 자전거 타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자전거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기 보다는 여가시간을 즐기기 위한 것이라고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경치 좋은 바닷가나 강가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멋진 취미생활이라 할 수 있다. 여가가 아니라 이동수단으로 본다면 어떨까? 자전거도로가 전무한 시내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일단 안전을 담보할 수도 없다. 도로의 난폭한 운전자들 사이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상당한 담력을 필요로 하고, 그렇다고 인도에서 보행자들과 함께 섞여 타는 것도 그리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단 하나의 해법은 자전거도로다. 하지만 여전히 자전거를 자동차와 같은 이동수단이 아니라 여가의 수단으로 보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첫번째 걸림돌일 것이다. 가뜩이나 이런 상황에서 자동차도로의 일부를 뚝 떼서 자전거도로를 만든다고 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반대할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인도에다 만드는 일도 간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만들고 난 후의 관리도 문제지만, 일단 만드는 것부터 난관이 너무 많다. 여러 난관을 이겨내고 자전거도로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몇 킬로미터 구간으로 생색내는 데 그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시내의 상황과는 참 무관하게 정부에서는 자전거도로를 대단한 치적인 양 자랑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강과 낙동강을 따라서 자전거 길을 잘 만들었으니 이용하라는데, 일단 그 잘 만들었다는 자전거도로까지 가는 게 문제다. 정부가 홍보하는 것처럼 자전거도로가 잘 만들어졌다고 한들 과연 그 아름다운 자전거도로를 이용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다. 물론 차에다 자전거를 실어서 강변까지 가서 타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을 뿐이다. 이런 강변의 자전거도로를 친환경적이라고 자랑을 하는데, 강변에 이런 것을 만들겠다는 것부터가 친환경적이 못한 발상이다. 백번 양보해서 친환경적이라고 치더라도 접근성 문제등을 고려한다면 이런 아름답고 친환경적인 길도 결국 국민의 극히 일부만이 즐길뿐이다. 한마디로 투자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는 말이다.

교통정책의 경우에도 차가 막힌다고 도로를 더 만들것이 아니라 자동차 이용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쪽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 자동차 이동 수요를 억제한다면 결국 시민들에게 대안을 제시해야한다. 자전거가 가장 중요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다면, 시민들이 자유롭게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미래의 친환경적인 이동수단으로 자전거를 떠올리지만,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해결해야할 일들이 많아보인다. 현재의 편의를 미래를 위해 조금 양보하는 건 어떨지 함께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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