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바뀌면 생활도, 생각도 많이 바뀐다는 것을 요즘 많이 느끼고 있다. 너무도 편하게 먹고 놀았던 한국에서의 길고 길었던 휴가가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 독일 생활은 또다시 새로운 맛이 있다.
부산 집은 생각해보면 책 읽기 참 좋은 조건을 갖춘 집이다. 부산항을 내려다 보며 저녁 노을을 맞으며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좀 있는 놈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문제는 올 여름은 부끄러운 말이지만 몇 권을 읽은 게 다였으니 참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독일에서 다시 독서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책이 마땅히 없다는 것 정도!
다행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줄 구원투수를 한국에서 대려왔다. 바로 아이패드다. 삼 년여를 지나면서 한국을 세 번 다녀왔다. 그때마다 책을 좀 가져왔으면 했는데 책은 너무 무겁다. 당연히 종이책 얘기다. 배낭에 책 몇 권 넣을라 치면 벌써 배낭 배가 불러오고 묵직함이 내 어깨를 짓누른다. 그러니 꼭 필요한 책 말고는 다시 책장행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전저책이 나에게는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왔다.
책은 역시나 모으는 맛인데...... 한 권의 책을 첫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읽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좋다. 그저 책장에 책이 그득한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돈을 벌면서는 책을 꾸준히 사곤 했다. 이제는 그럴 처지가 못된다는 게 참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또 책을 읽으면서 한 장, 한 장 책장으로 넘기며 손으로 느끼는 촉각도 참 좋다. 그리고 읽은 부분은 점점 늘고, 읽어야 할 부분이 줄어드는 걸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이것도 종이책을 손에 들고 읽는 기쁨 중에 하나 일 것이다. 아쉽지만 전자책은 이런 즐거움은 없다. 아랫쪽에 얼마나 읽었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숫자로 보여주기는 하지만 눈으로 그리고 손으로 느끼는 것과는 와 닿는 정도가 다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읽고싶은 책을 전자책으로 구해 읽을 수 있다면 없는 것에 비하면 무한한 기쁨이다.
전자책이라는 (나에게는)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패드가 참 큰 몫을 했다. 스마트폰을 써보기는 했지만 그 작은 화면으로 책을 읽는 건 생각만 해도 눈이 아플 지경이다. 때마침 쓰고있던 스마트폰이 살짝 맛이 가면서 타블렛PC로 생각이 옮겨갔고 통큰 어머니의 도움으로 아이패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직 한국 책은 많지는 않지만 애플의 iBooks, Google Play는 새로운 땅이었다. 또 주요 인터넷 서점에 eBook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세상 참 좋다. 열흘 남짓 동안 몇 권을 읽었는데 주머니 사정만 아니라면 참......
어제 했던 번역 얘기로 돌아가 볼까 한다. 번역을 하는 건 좋은데 역시 중요한 것은 어떤 책을 번역해서 어떻게 보급할까 (팔까) 하는 것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내가 번역을 하려고 하는 책들은 아쉽게도 전혀 대중적이지 않다. 그렇기는 하지만 분명히 독자층은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출판도 사업이라고 본다면 이런 종류의 책은 사업성이 없다. 그리고 번역을 하겠다는 사람도 출판사 쪽에서 생각을 해보면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력이 삐까번쩍 것도 아니니 투자를 할리 없다. 어느 분야든 진입장벽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노력하면 넘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저변이 유지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출판의 벽은 나에게는 넘사벽으로 보인다.
그러면 내가 직접 책을 만들면 어떨까? 요 몇 일 이런 저런 것들을 찾아보면서 이런 쪽으로 생각을 하고, 실제로 직접 책을 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되었다. 일인출판사, 자가출판, 독립출판...... 의미가 조금씩은 다르지만 출판 분야에서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확실한 듯 하다. 또 요즘은 전자책으로 책을 내는 것을 도와주는 출판사도 있고, 교보문고와 알라딘 같은 인터넷서점에서도 일반인들의 책을 전자책으로 만들고 팔 수 있는 길을 열어넣고 있다. 기존의 종이책 출판에 비하면 진입장벽이 낮다. 그렇다면 나도 한 번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하고싶은 일이 생긴 딱 그정도다. 알아야 할 것이 많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나의 역량을 키우는 일, 그리고 내가 무엇을 더 알아야 하고 준비해야 하는 지를 아는 것이 그 출발일 거라고 본다. 이미 출발선에서 한 걸음은 땠다. 결승점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첫 번째 모퉁이는 보인다. 내 인생의 새로운 레이스가 시작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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