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7.

부산의 산동네, 산복도로 2 - 보수동, 대청동

산복도로에서 바라보는 부산의 구도심

안창마을에 이어 어제(9월 6일)는 중구 지역의 산복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창마을도 그랬지만 역시나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이곳도 역시나 딱히 가볼 기회는 없었다. 보수동헌책방 골목이야 가끔 가곤 했지만 그쪽을 돌아볼 일은 아직 없었다. 9월 들어 날이 많이 시원해졌다고는 하지만 여름의 끝자락도 여름은 여름인지라 계단을 하나, 하나 올르면서 흐르는 땀은 어쩔 수 없었다.

계단을 따라 그려진 벽화

북극곰의 미소와 철조망

보수동 책방 골목 뒤로는 가파른 경사지에 집들이 들어서 있고 그 사이로 가파른 계단이 나있다. 계단이 두 군데 있는데, 한쪽은 벽화를 예쁘게 잘 그려놓고, 나무계단을 깔끔하게 다시 깔고 얼마 되지는 않지만 지붕까지 만들어주면서 다른 한쪽은 그냥 맨 계단이다. 이왕 하는 일이면 같이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 생각이 든다. 첫번 째 계단 끝에는 북금곰이 웃고 있는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벽화 속 북극곰의 미소와 대문 위의 철조망은 묘하게 대비를 이룬다.

회전형 계단

지난 주 둘러본 범일동, 범천동 쪽과는 좀 달라보인다. 그쪽은 집이 빼곡히 들어서 있기는 하지만 능선과 계곡이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특별한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눈에 들어오는 집만 싹 걷어내면 과거 지형도 어느 정도는 그려볼 수 있다. 그에 비해 보수동과 대청동 쪽은 산 정상부에서 바다쪽으로 가파르게 떨어지는 경사면 위에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다. 경사면을 따라 좁은 좁은 골목이 집과 집 사이로 나있다. 더러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계단은 깔끔하게 정비가 되어있다.

경사진 연결도로

연결도로의 아래

연결도로 아래를 가로지르는 골목

영도 봉래산 중턱, 서구와 사하구 일대, 황령산, 금정산, 장산 중턱에도 산복도로가 있지만 역시 부산의 산복도로 하면 망양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산 아래 간선도로와 망양로 사이에도 고도에 따라서 도로가 개설되어 있고, 높이가 서로 다른 도로를 비스듬히 연결하는 도로도 있다. 어제는 다른 곳에서는 보지못한 재미있는 도로를 볼 수 있었다. 경사진 2차선 도로의 양쪽으로 2층 주택이 들어서 있고, 집들 사이로 골목도 나있다.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래쪽 도로와 위쪽 도로를 고가도로 진출입로 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도로 아래에 공간이 있고, 일부 주택의 1층은 도로 아래에 있다. 도로 아래 공간에는 간단한 운동기구를 설치해서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도로를 만드는 아이디어는 참 좋은데, 도로 때문에 지하 같은 1층에 사는 사람들이 어떨지 모르겠다.

보수아파트
옥상주차장

책방 골목에서 출발해서 민주공원 아래 숲이 있는곳, 이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5층 짜리 아파트가 있다. 이 아파트가 이곳에 언제 지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교 들어갈 때 쯤 이미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복도식이나 계단식 아파트를 볼 수 있었는데, 이 아파트는 구조가 그런 구조가 아니다. 이 아파트가 들어설 당시에는 망양로에 버스가 다녔을까 싶다. 버스가 없었다면 이 아파트 사람들은 보수동의 큰 길에서 적어도 15분, 20분을 쉬지 않고 걸어 올라와야 했을 것이다. 내가 천천히 사진 찍고, 이것 저것 한눈 팔면서 30분 정도 걸렸나 했으니까 매일 오르락 내리릭 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을 듯 하다. 지금이야 조금만 내려가면 시내버스도 다니고, 자가용도 많이 보급되었으니 예전보다야 편해졌을 것이다.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산동네를 오르락 내리락 하던 수고스러움은 줄었을지 모르지만 다른 골칫거리가 생겼다. 바로 주차난이다.

이쪽으로 사람들이 몰리던 시절과 지금은 주거지를 선택하는 기준이 많이 바뀌었다. 과거 도심과 가깝다는 점이 이 지역이 주거지로서 가지는 가장 큰 (혹은 유일한) 이점이었다면, 현재는 오래된 주택과 불편한 교통 등의 이유로 주거 여건이 좋지 않은 곳으로 분류된다. 부산시에서 이런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결국 관건은 말 그대로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느냐 인 것 같다. 원주민의 삶의 질 개선과 함께 새로운 인구를 유인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기존의 주거지 재개발 사업의 경우 이런 지역에서는 수익성 문제로 사업 자체가 어렵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의 용역보서나 다른 관련 연구보고서에서도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주민밀착형, 주민참여형 도시 재생 사업이 되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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