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마을 |
지난 8월 한국 여행 중 부산을 찾았던 나의 독일 친구는 부산에 대해 자연과 도시가 함께 있어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서울은 너무 도시적인 색이, 제주도는 자연의 색 한쪽이 강렬하지만, 부산은 그 두 색을 함께 가진 도시라는 찬사였다.
외지인들이 부산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라면 아무래도 해운대, 태종대, 자갈치...... 뭐 이런 유명한 관광명소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멀리서 친구들이 찾아오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런 곳들로 안내를 하는 것은 그들의 부산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해운대 해수욕장 주변의 호텔들과 으리으리한 건물들은 화려한 현대적인 대도시 부산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것은 그저 부산의 단편일 뿐이다. 그런 화려함과는 서로 어울리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산중턱까지 들어찬 갑갑해 보일 수도 있는 집들도 부산의 또 다른 모습이다. 오늘은 이런 곳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안창마을'은 부산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들어본 동네이름일 거라 생각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리고기로 유명하고, 몇년 전부터는 마을에 그려진 벽화때문에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곳이다. 나도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가본 것은 지난 주가 처음이었다.
조방앞(구 조산방직이 있던 범일동 일대)에서 현대백화점을 돌아 산복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서 마을 어귀까지 30분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마을 어귀 시내버스의 회차지가 보인다. 계곡을 따라 집들이 있고, 텃밭도 있고, 복지회관이며 노인 요양시설 같은 큰 건물도 보이지만 회차지 앞에 서기 전에는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은 엄광산 자락 위치한 산간 분지에 들어앉아 있다. 그러니 분지의 아래쪽에서는 마을의 집들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에서도 역시 엄광산의 산세에 막혀 부산의 대표적인 산복도로인 망양로의 같은 전망은 기대할 수 없다.
안창마을로 올라가는 길. 안창마을은 능선 너머에 있다 |
부산의 중구, 동구, 영도구 등지의 산동네는 일제시대와 광복, 전쟁을 거치는 파란만장했던 부산의 도시 발달 역사와 함께 만들어졌다. 당시의 폭발적인 인구증가로 소위 '하꼬방'이라고 하는 판자집으로 시작해서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산복도로가 개통되고, 판자집은 개량되어 현재는 2~3층의 다세대 주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안창마을의 경우 이런 산복도로에서도 더 올라가야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집도 오랜된 단층주택이 많고, 간혹 빈집도 볼 수 있다. 이곳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은 아마도 산 아래에서 밀리고 밀려 이곳까지 오지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길 없음 |
잘 정비된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길 없음', '진입금지'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차로는 더이상 갈 수 없지만 골목은 더 높은 곳까지 나있고 산자락을 따라 집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서쪽 능선에 자리잡은 동의대학교 기숙사 높은 건물은 마을의 모습과는 참 어울리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안창마을'을 검색해보면 앞서 얘기한 것처럼 오리고기와 벽화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룬다. 오리고기야 사람들 먹고 사는 문제니 제쳐두고, 벽화는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안창마을을 비롯해서 부산만 해도 벽화마을로 알려진 곳이 몇 군데 있다. 이런 곳들이 이름이 나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으로 알고 있다. 벽화를 그리는 자원봉사자들의 노고는 고맙게 생각해야겠지만, 과연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벽화 그리기 사업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벽화로 외관이 아름다워진다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까지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적당히 예쁜 포장지로 싸서 내용물은 보이지 않게 하려는 꼼수 같은 것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사진 찍는 사람들도 잘 생각을 해보야할 문제가 있다. 사진도 좋지만 주민들 생각도 잊지 말아야 일이다. 내가 그곳에 살고 있다고 하면 달리 볼 수 있는 일이테니까 말이다.
부산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부산의 산복도로와 산동네는 단순한 주거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 곳이다. 특히나 부산의 도시 이미지와도 직결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안창마을은 이 사업의 시범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사업이 진행되고 마을이 바뀔지 지켜볼 일이다. 서울의 뉴타운은 실패한 불량 주거지의 재건축 사업이다. 도시 재생 사업인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의 취지에 맞게 마을에 다시 생기가 넘쳐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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