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17.

악기상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공항 놀이(파리 샤를 드 골 공항, 201.12.25)


독일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매년 한국에서 장기 휴가를 보내고 있다. 날이 밝으면 가족들과 친구들이 기다리는 한국에서의 세 번째 휴가가 바야흐로 시작된다. 그런데 지금 이곳 킬(Kiel)은 빗소리가 참 시원하게 들리고 있고, 때마침 태풍도 올라오고 있다고 하니 상해에서 뜻하지 않게 하루를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날씨 참 요상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참 적절하게 비가 내리고 있고, 태풍도 참 적절한 시기에 찾아온다. 나의 절친들은 나를 '악기상의 아이콘'이라고도 부르곤 한다. 그만큼 별별 일을 많이도 겪다보니, 또 날씨란 것이 누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기에 그냥 그 상황에 맞게 잘 행동하려고 애쓸뿐이다.
악기상과 관련해서 이렇다할 얘기 거리 하나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만은, 나는 유독 좀 많은 것 같다. 2010년 독일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한국 가던 날. 날이 엄청 추웠고 베를린에는 살짝 눈발이 날렸다. 베를린 테겔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눈이 많이 와서 항공기가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그리고는 두 시간인가 세 시간인가를 기다려서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지연 시간이 조금 길어졌다면 하루를 베를린에서 더 보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해 한국에서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서 바로 떠난 스페인 여행. 역시나 출발하던 날 새벽 베를린에 함박눈이 왔고, 7시 쯤 출발 예정이었던 비행기가 지연되더니 결국은 파리에서 빌바오로 가는 연결편을 간발의 차로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파랗게 개인 파리의 하늘을 파리의 샤를 드 골 공항에서 하루 종일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아름다운 추억도 있다. 그 외에도 집을 나서면 맑던 하늘도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는 일은 다반사요, 갑자기 돌풍과 폭우를 만난적도 있고, 몇일을 비를 쫄딱 맞고 여행한 기억까지...... 눈, 비, 바람, 태풍 등등등 악기상은 나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악기상을 경험하면 '재수가 없었다'라는 말로 위로한다. 또 갑작스런 날씨의 변화를 기상 예보 당국의 무능력이라고 비판을 하기도 한다. 현재 인류의 기술로는 날씨를 어찌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예측을 한다는 것 또한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일을 두고 누구를 탓해봐야 자기 입만 아플 뿐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면 그만인 일이다. 악기상으로 인해 나와 내 주변, 멀리는 많고 적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말이다. 놀러가기로 마음 먹은 날 비가 온다면 선택은 두 가지다. 집을 나서든지, 집에 앉아서 비오는 걸 구경하든지. 비 오는 날 집을 나선다면 나름의 운치가 있고, 오히려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더 좋을 수도 있다. 만약 집에 있는다고 해도, 찌짐 척 붙여서 동동주 한 잔 해도 나쁘지 않은 조햡일 것이다. 문제는 애매한 날씨다. 이런 때 사람들은 일기예보를 찾아본다. 그리고는 나름의 사고과정을 거쳐 날씨를 예측하고 판단을 내리게 된다. 예측과 날씨가 일치한다면 뭐 그러려니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누군가에게, 또는 어디에 항의를 하거나 하소연을 한다. 그 첫 번째 대상은 보통 기상청이 되는 경우가 많다. 기상청에서 내놓는 강수확률은 그저 하나의 통계수치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거기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보이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기상청 체육대회 하는 날 비가 왔다는 얘기는 기상청의 무능력을 비꼬는 데 많이 인용이 되지만, 사실 기상청 사람들이라고 특별히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닐테고, 그냥 미리 정해전 날짜에 행상를 진행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일기예보의 강수확률을 보고 비가 올지, 안 올지를 추측하는 것은 도박에서 배팅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강수확률 90%는 현재(또는 예보 당시의) 기상과 유사한 상황에서 100번 중에서 90번은 비과 왔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나머지 10번은 비가 내리지 않은 경우였다는 말이다. 확률적으로 비가 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연히 보통은 그럼 비가 오겠거니 생각을 한다. 강수확률 50%도 마찬가지다. 확률은 반, 반. 배팅은 확률에 낮은 쪽에 걸어서 적중할 경우 배당이 훨씬 높아진다. 날씨도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다. 가령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4월의 어느 봄 날, 강수확률은 90%. 보통의 사람들이 방콕여행을 선택할 때 과감하게 꽃놀이에 배팅한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만약 비가 오지 않는다면 평소보다 한적하게 꽃구경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비가 온다고 해도 비에 젖어 떨어지는 벚꽃을 볼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을 선택일 수 있다. 물론 비만 쫄딱 맞고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무튼 확률이 낮은 만큼 그에 따른 반대급부도 큰 것이다. 선택은 내가 하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을 탓하는 건 좋지 않은 태도다. 날씨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예보라면 상해에서 하루를 보내야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원래 7시간 정도 환승 대기 시간이 있는데, 오히려 태풍으로 비행기가 하루 미뤄지면 덤으로 상해 시내 구경도 한 번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생각하면 나쁠 것이 없다. 물론 기본적인 숙식을 항공사에서 제공한다는 전제 아래서 말이다. 하루 늦게 간다고 가족들이 나 몰래 이사를 해버릴 것도 아니고, 부산에서 당장 대단히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저 안전하게 부산에 도착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비행기가 정시에 뜬다면 예상했던 시간에 부산에 도착할 수 있어 좋고, 하루 지연이 되면 상해 구경할 시간이 생겨서 좋다. 장시간 비행으로 몸은 피곤하겠지만, 마음만은 좋은 부산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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