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을 바라보는 엄마는 불혹을 바라보는 아들과 마주 앉은 점심 밥상에서 기어이 흙수저 얘기를 꺼내셨다. 지금부터 십수년 전 엄마는 일 잘하는 도배기사셨다. 10년 가까이 도배일을 하시며 무릎 연골이 닳아 더이상 그 일을 할 수 없었던 엄마는 그렇게 오랫동안 해온 일을 그만두고 언제 끝이날지 알 수 없는 길고긴 재활의 시간을 지금도 살고 계신다. 몇년 전부터는 오전에 몇 시간 정도 하는 건물 청소 일을 하셨는데, 그마저도 몸이 더이상 따라주질 않아 계약이 끝나는 올 3월 말까지만 하고 그만두겠노라 말씀을 하셨다. 진작부터 힘이 든다 말씀을 하셨는데 아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잘 된 일이다 싶다. 일을 그만두시면 아버지 회사 근처로 이사를 할까 생각중이신가 보다.
지금이 독립할 좋은 기회라 생각하는 아들은 이사에 두팔 벌려 격하게 찬성을 하는 바이지만, 결국 이야기는 불편한 결혼 이야기로 옮겨간다. 아들이 결혼을 하면 아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내어주고 두 분은 이사를 하시겠다고 하신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사를 하셔도 된다는 아들의 말에 결혼 전에는 어름도 없다고 강경하게 맞서는 엄마다. 오고가는 대화 중에 엄마는 어디서 들으셨는지 흙수저 얘기를 꺼내셨다.
"부모 재산이 5000만원이 안되면 흙수저라 카드라. 그러니까 느그는 둘 다 흙수저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냐는 아들의 타박에 TV에서 그 카드라는 엄마의 말에 아들은 뭐라 대꾸를 해야할지 몰랐다.
아들이 서른이 넘어 유학을 가겠노라 했을 때, 변변히 뒷바라지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몰래 눈물을 훔치던 엄마였다. 그게 벌서 햇수로 7년 전 일이다. 그 일도 벌써 한 참 전 일이 된 걸 보면 시간은 야속하게 빨리 흐른다. 아들은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데 엄마는, 부모는 해준 게 없어,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아들에게 미안한가 보다.
지난 2015년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흙수저'란 말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때, 그들의 부모들은 속으로 얼마나 울어야했을까. 스스로를 흙수저라 칭하는 젊은이들도, 그들의 부모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것이지 보통의 사람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자책하고,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미안해한다. 잘못한 게 없는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심지어 사과를 해야하는 상황을 납득할 이가 몇이나 될까? 납득할 수 없지만 그렇게 흘러가는 현실 앞에 절망하지 않고 의연할 수 있는 이는 또 얼마나 될까?
글을 쓰면서도 답답하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사실 모르겠다. 개인이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주저앉아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자, 부모님께도 당신들이 미안해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자. 그 시작은 공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시대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젊은이들과 부모님들께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2016. 1. 12.
2016. 1. 7.
나의 그림자는 어떤 얘기를 하고 있을까? - 마크 레비, 그림자 도둑(2010)
그림자 도둑(출처:다음 책) |
정말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쓴다. 2016년에는 차분히 글을 쓰는 노력을 해볼까 한다.
2016년 첫 번째 글에서는 해가 바뀌고 시립도서관 대출증을 만들고 처음으로 손에 잡은 책 "그림자 도둑(마크 레비, 2010)"에 대한 얘기를 풀어볼까 한다.
주인공 소년은 다른 사람의 그림자와 자신의 그림자가 겹치면 상대의 그림자를 훔칠 수 있다. 훔친 그림자는 소년에게 그림자의 주인 이야기를 해준다. 그 이야기는 그림자 주인이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아픔과 슬픔, 고민에 관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소년은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기도 하고,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림자는 어둠을 상징하곤 한다. 이 소설에서도 역시 그림자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소년의 어린 시절 친구 였던 이브 아저씨의 말처럼 그림자는 사람의 내면에 감춰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아픔과 슬픔이다. 또는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것들일 수도 있다. 다른 이들의 그림자를 통해 다른 사람의 어둠을 이해하지만 주인공 소년은 정작 자신의 그림자가 하는 이야기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떠나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어머니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고, 어린 시절 추억 속의 소녀 클레아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은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걸림돌이었다.
누구나 가슴 속에 그림자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간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싫은 것이든,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이든 말이다. 나의 그림자는 어떤 말을 할까? 풀어내지 못한 사연은 어딘가에서 인생의 어느 순간에서 우리를 힘들게 할지 모른다. 짙게 드리운 그림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그렇게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내면을 깊게 들여다 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저런 복잡한 일들이 많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많이 한다. 주인공과 친구 뤼크의 관계가 그런 것 처럼 말이다. 친구라는 존재는 때로는 가족보다 더 가깝기도 한 걸 보면 그들이 나에게는 그림자 도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피드 구독하기:
글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