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16.

한국에서는 배우지 못한 것



어제 강의를 하나 접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11월 들어서 계속 나를 압박하던 과제였는데, 내려놓고 나니 확실히 후련하다. 마음만 급하다고 빨리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천천히 천천히 가려고 한다.


아침 일찍 강의를 하나 듣고 다시 도서관에 앉았다. 점심을 먹고 다음 강의까지 남은 시간에 오랜만에 호기를 부려본다. 얼마만에 글을 쓰는지.....


오늘은 대학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과제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까 한다.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나이지만 독일에서는 대학생활은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다. 낯선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지금 나를 가장 애먹이는 건 과제다. 대학생이 과제 하는 거야 별다른 일은 아니지만, 그게 생각만큼 간단하지가 않다. 언어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지금은 당연한 걸테니까 접어두고, 다른 자료를 인용하는 걸 상당히 까다롭게 본다. 대학 다니면서 수많은 과제를 해보았지만, 한국에서는(적어도 내가 들었던 강의에서는) 과제에 어떤 부분을 어디서 인용했는지 밝히지 않는다고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게다가 졸업논문을 졸업시험으로 대체했던 터라 장문의 학술적인 글을 써본 경험도 없다. 그러니 그런 류의 글쓰기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 모르겠다. 내가 졸업한 지도 벌써 어언 6년이 넘었으니 지금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을 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그랬다.


강의 하나를 수강포기를 했지만, 여전히 매주 꼬박꼬박 과제가 나오고 있는 원격탐사, 그리고 곧 이것 저것 과제를 던져줄듯한 GIS를 비롯한 다른 과제들..... 많은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저냥 해볼만 하기도 하다. 지난주에는 원격탐사 첫 과제 점수가 나왔다. 제일 잘하면 1, 낙제는 6이다. 그런데 내 점수는 4. 처음으로 한 과제인데 실망은 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내가 꼼꼼히 읽어보지 않은 탓도 있지만, 이 과제를 하면서도 인용을 한 부분을 정확히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몰랐다는 것이었다. 그냥 끝에 참고한 자료만 적으면 되는거라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채점을 한 강사가 점수에 대해서 꼼꼼하게 설명을 달아놓았다. 내용일 잘못되어서 점수가 낮은거야 그렇다고 해도 다른 것 때문에 감점이 된다면 기분이 좋을리 없다. 다행인 것은 첫 과제에는 웹서버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몇몇 학생들의 참고자료가 누락되어서 그부분은 채점과정에서 반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이 과제는 웹 기반 과제라 매주 7~8개 정도의 문제를 주고 답을 인터넷으로 올리는 형식이다) 두번째 부터는 엄격하게 점수를 줄 작정인 듯 하다.


올해 초 독일에서는 현직 국방장관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문제로 한번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결국 그 문제로 젊고 인기 있는 정치인이었던 그는 결국 여론에 밀려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도 고위 공직 임용 후보자들 검증과정에서 비슷한 문제가 붉어진 적이 있었지만, 그 문제로 낙마한 사람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냥 실수였다, 착오였다, 이런 말로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간 높으신 분들이 많은 걸로 안다.
이것만으로 전체 사회의 격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왜 대학에서는 이런 걸 똑바로 가르쳐 주지 않았나 하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듯 하다. 인터넷에서 학생들은 자신들의 과제를 사고, 팔고 한다. 단돈 몇 백원이라도 돈을 받고 팔았다면, 그 정도의 가치는 해야한다.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의 질은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그런 자료들이 거래가 되고 있다면 문제가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어제 집에 들어가면서는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과연 세상에 새로운 지식이란 건 있는 걸까? 누군가가 쓴 글을 다른 이가 인용하고, 또 그 글을 또 다른 이가 인용을 하고...... 이런 식이면 더이상 새로운 것은 없는 건 아닐까?...... 지금은 모르겠다. 다만 누군가의 지적 작업의 결과를 내가 취했다면 그게 누구의 것인지를 밝혀주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거 한다고 돈드는 거 아니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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