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9.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순례길, 그 길을 생각하다

카미노를 걸으며 볼 수 있는 풍경과 그 곳의 날씨에 대한 얘기는 이미 했고, 이번에는 그 길에서 느꼈던 것들, 내가 했던 생각에 대해 나눠볼까 한다.

이미 앞선 글에서 밝힌 것처럼 카미노는 한편 아름다워 보이지만 또 한편 가혹하기도 하다. 카미노를 걷기 시작하고 며칠은 몸이 고생이다. 물론 트래킹이나 등산으로 잘 단련된 사람은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나흘은 고생을 해야하는 게 보통이다. 걷기에 필요한 근육이 천천히 만들어지는 시간이다. 물집이 잡혀 걸음 걸음이 고욕일 수도 있고, 근육통으로 고생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몸이 천천히 카미노에 적응하게 된다. 물집도 잘 관리하면 며칠 내에 큰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된다. 근육통은 스트래칭으로 잘 풀면서 가면 큰 문제가 없다.
사실 몸이 가장 힘든 때는 보통 초반이다. 물론 나의 경우 메세타를 지나며 정강이 쪽 인대가 말썽을 일으켜서 며칠 크게 고생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카미노의 초반 2주 정도를 함께 걸었던 로버트 아저씨가 내 몸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컨디션은 그날 그날 달라지고, 시시각각 또 변한다. 내 몸이 뭐라고 하는지 잘 듣지 않고는 그 먼 길을 걷기 힘들다. 컨디션이 좋다고 너무 자만해서도 안 된다. 나의 경우 메세타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40km를 하루에 걸었다. 물론 하루만 걷고 말 길이면 대단히 힘든 일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리고 또 수백km를 걸어야 하는 길이라 사정이 좀 달랐다. 그날 저녁 충분히 스트래칭을 하고 쉬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더니 다음날 바로 신호가 왔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엔 오전에 몇시간을 걷고 멈춰서야 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다. 된통 고생을 하고는 그날 오후에 약국에서 파스를 사다 붙이고 통증을 참으며 스트래칭을 했다. 다음날은 진통제를 먹고 걷긴 했지만 생각보다 회복이 빨라 다행이었다. 메세타에서 고생했던 며칠은 잊을 수 없다. 로버트 아저씨는 하루 하루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도 말씀하셨다. 하루 하루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큰 의미이고, 힘든 여정을 잘 버텨준 내 몸에 감사할 따름이다.

오랜 기간, 매일 매일 꾸준히 걸어야 하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내 몸 상태도 중요하지만 날씨와 길 자체도 큰 변수가 된다. 날씨 얘기는 앞선 글에서도 했지만 좋지 않은 날씨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고 생각을 하는 편이 좋다.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자기 전에,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꼭 확인하는 것이 날씨다. 날씨가 좋아도, 좋지 않아도 걸어야 하는 길이 카미노다. 날씨는 자연 앞에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해준다. 나는 로그로뇨를 지나 부르고스로 가는 길에서 가장 혹독한 날씨를 경험했다. 소나기를 만나 홀딱 젖은 상태로 한 시간 넘게 걸어야 했던 날도 있고, 그리고 이틀 정도는 엄청난 바람을 정면으로 받으며 걸어야 했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피할 곳 하나 없는 들판에서 그래도 걸어야 했다. 별 수 없다. 아마 한여름이라면 열기와 햇볕을 견디며 걸어야 하는 곳이 카미노다. 선택은 딱 두 가지다. 걷던지, 멈추던지. 불평을 한다고 날씨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순응까지는 아니라도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는 하루 하루가 고욕일 수 있다. 그것 또한 선택이다.

그라뇽에서 만난 자원봉사로 호스피탈레로 일을 하고 있던 일 데폰소 아저씨는 부르고스를 지나 걷는 메세타에서의 카미노가 진짜 카미노라고 얘기하셨다. 너무나도 평탄한 곳에 곧게 뻗은 길은 머리 속에서 그릴 때는 얼마든지 쉽게 지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곳에서 일정을 이틀 정도는 줄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곳을 걸으며 왜 그것이 진짜 카미노인지를 알게 되었다. 메세타에서 다리가 고장나서 고생을 한 탓도 있겠지만 몇 시간씩 그저 곧게 뻗은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은 그리 쉽게 얘기할 것이 못 된다. 곧게 뻗은 도로와 나란히 걸어야 하는 길에서는 지나는 차를 보면 차로는 5분, 10분 이면 갈 길을 걷고 있는 것이 한심하다 느껴지기도 했다. 또 들판을 가로지르는 너무나도 곧게 뻗은 길을 하염없이 걷을 때는 무슨 정신으로 걸었나 생각하면 지금도 힘이 든다. 저 멀리 보이는 길 끝에는 마을이 있을까 열심히 걸어보아도 같은 길이 계속되는 곳은 빨리 지나고 싶단 생각이 들지만,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미친듯이 걸어서 빨리 지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으니 어찌할 방법이 없는 곳이었다. 로버트 아저씨와 앤디 아저씨와도 메세타에서 헤어졌다. 날씨가 좋을 때 더 가야겠다는 아저씨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메세타를 그냥 버스를 타고 지난다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 지루하다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렇기에 반대로 그 곳이 진짜 카미노란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야 하는 길이 카미노인까 말이다.

이 글을 마무리 하며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 내 가슴 속에 남은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야 하는 길 카미노. 그 길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는 결국 개인의 몫이다. 매 수간이 꽃길 같을 수는 없지만, 이제 겨우 2주 정도가 지났지만 나의 기억은 이미 상당히 미화되었다. 힘들었던 기억들도 시간이 더 지나면 결국 추억이 되는가 보다. 그런 길을 나는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걷겠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2017. 3. 7.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순례길, 그곳의 오묘한 날씨에 대하여

기후학 교과서를 보면 스페인은 덥고 건조한 여름과 온화한 겨울로 대표되는 지중해성 기후(Cs)로 분류된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기후 구분이 갖는 근본적인 스캐일의 한계를 생각할 때 앞서 밝힌 기후의 특성은 그저 참고사항일 뿐이다. 한겨울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부산역에 내려 따뜻하다 느끼는 것은 부산과 서울의 기후가 사람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만큼 큰 차이를 보인다는 뜻이다. 하물며 대한민국 각지의 기후가 그렇게 차이가 나는데 스페인이라고 다를리 있겠는가.

앞선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프랑스길의 초반 1/3 정도는 포도밭과 올리브밭 사이를 지나는 길을 따라 걷게 된다. 포도와 올리브는 지중해성 기후를 대표하는 작물이라고 학창시절 지리 시간에 배운 기억이 나는가? 덥고 건조한, 사하라 사막과 비슷한 기후를 보이는 여름을 견딜 수 있는 작물이 지중해성 기후를 대표하는 작물이다. 대표적으로 앞서 언급한 포도와 올리브 그리고 오렌지 등이 그런 작물에 속한다. 물론 4년 전 얘기기는 하지만 독일에서는 슈퍼마켓에서 5유로 정도 하는 와인이면 나쁘지 않은 정도라고 했었는데, 스페인에서는 3유로 정도에도 괜찮은 와인을 마실 수 있다. 독일 남부에서도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생산하기는 하지만 독일 와인을 고급 와인으로 취급하진 않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카미노를 걸으며 만나는 포도밭을 보면 그 규모에 놀라게 된다. 2월에 접어들면서 슬슬 포도농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포도주 외에도 스페인 오렌지도 참 맛이 좋았다. 물론 싸다. 오렌지 1kg에 2유로도 안되니까 부담 없이 사먹을 수 있는 과일이다.

먹는 얘기는 이정도로 하고, 카미노를 준비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사실은 날씨였다. 대충 어떨 것이다 정도 예상은 했지만 짐작하기 힘든 것이 유럽의 겨울 날씨다. 물론 서유럽이나 북유럽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온화하긴 하겠지만 오락가락 하는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다행인 것은 내가 걸었던 30일 중에 비가 내린 날은 단 8일. 생각보다 날씨가 좋았다. 그리고 2월 들어서는 낮에는 15도 가까이 기온이 올라갈 정도로 따뜻했다. 평년보다 따뜻한 겨울이었을 수도 있고, 암튼 개인적으로는 운이 좋았던 편이다. 겨울 날씨는 워낙 예측하기 힘들어서 계속 비를 맞으며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겨울에는 비에 대한 대비는 필수다.
비가 내리는 날도 힘들었지만, 이틀, 사흘 정도는 강풍에 고생하기도 했다. 동에서 서로 가는 카미노에 서풍이 미친듯이 부는 날엔 바람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나의 카미노에서 가장 혹독한 날씨는 미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렸던 날이다.

겨울은 악천후와 추위에 대비 해야한다면 여름은 무더위가 문제가 된다. 여름에는 걸어보지 않아 얼마나 더운지 말하기 힘들지만, 한여름 작렬하는 태양, 그날 한 점 없는 카미노를 걷는 일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길 주변의 풀과 나무들을 보면 대충 여름 기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앞서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길 옆에 있는 풀이나 나무는 사막이나 사막 주변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에서 보았을 법한 것들이다. 한국의 숲에서 흔히 보는 그런 나무는 지중해성 기후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산지가 많고 서풍을 가장 먼저 받는 서쪽의 갈리시아 지방은 상대적으로 강수량이 많아 보인다. 메세타를 지나며 만나는 황량한 평원이 갈리시아 지방에서는 숲으로 바뀐다. 잎이 넓은 나무가 숲을 이루고 카미노도 그런 숲 사이를 지난다. 카미노의 초중반에 만나는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기온의 차이 보다는 강수량의 차이가 만드는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영화 "활"의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이 이런 대사를 날린다.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카미노에서 날씨는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불평한다고 바람이 잦아들고, 비가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비, 바람을 피할 곳도 없는 들판에서 순례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저 걷거나, 적당히 쉴 곳을 찾아 쉬는 것 외에는 없다. 이것 또한 카미노다. 다음에 다시 카미노를 걷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장담할 수 없다. 다시 걷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절대 여름을 선택하진 않을 작정이다. 나는 그렇단 말이다. 카미노를 소개하는 여행 팟캐스트에서는 가장 걷기 좋은 계절이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날 때라고도 하더라. 결국 날씨는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별 방법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날씨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대비를 잘 할 필요는 있다. 그것이 카미노의 날씨를 대하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혹독한 날씨를 견디며 걷는 일은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수도 있다. 걱정하지 마시라. 날씨는 날씨일 뿐이다.

2017. 3. 6.

Camino de Santiao, 산티아고 순례길, 그곳의 풍경

프랑스길이 지나는 스페인 북부의 내륙을 지나면서 보는 풍경은 다양하다. 주변에 자라는 나무와 풀을 통해서 대략적인 기후를 예상할 수 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하루, 이틀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때로 숲길을 지나기도 한다. 팜플로나를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는 카미노는 로그로뇨를 지나면서는 포도밭과 올리브밭이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지난다. 포도와 올리브는 지중해와 지중해성 기후를 대표하는 작물이다. 이런 들판을 지나며 내가 지중해성 기후 지역을 걷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학창시절 지리 시간에 지중해성 기후 지역에서 포도와 올리브, 오렌지 등을 많이 재배한다고 배우지 않았는가?

부르고스를 지나 레온 사이에서는 또 다른 풍경을 만나게 된다. 이곳의 카미노는 해발고도 800m가 넘는 메세타 고원의 북부를 동에서 서로 관통한다. 그라뇽에서 만난 호스피탈레로(알베르게 관리인) 일 데폰소 씨는 부르고스를 지나 메세타를 관통하는 카미노를 진짜 카미노라고 했다. 너무나도 편평한 땅 위에(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기는 하지만) 일자로 쭉 뻗은 길 주변에는 밀밭 외에 특별한 것은 없다. 일부 구간에서는 몇 시간씩 가도 가도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하는 곳이 메세타다. 왜 메세타를 진짜 카미노라고 말하는 지는 직접 걸어보고 판단하기 바란다.

생장에서 출발한다면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게 된다. 그 이후 부르고스로 들어가는 구간에서 메세타 고원의 동쪽 끝에서 시스테마 이베리코(Systema Iberico, 메세타 고원의 동쪽 경계가 되는 산맥)의1100m가 넘는 산을 넘는다. 산이라고는 하지만 산맥 동쪽의 고도가 대략 500∼600m, 부르고스 지역이 대략 800m 정도라 대단히 엄청난 부담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레온을 지나 메세타 고원의 서쪽 끝에서 1400m가 넘는 산을 하나 넘어야 한다. 산의 동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지만 서쪽은 한국의 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

메세타를 넘고 이어서 1200m가 넘는 산을 다시 넘으면 카미노의 끝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메세타를 지날 때까지 보았던 풍경은 좋게 말해 상당히 이국적이라면 갈리시아 지방의 풍경은 굉장히 익숙하다. 낮은 산과 언덕을 지나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이 이어진다. 카미노가 제주 올레길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는데 사리아에서 포르토마린으로 가는 길은 제주도의 돌담길을 지나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었고, 이어지는 길에서는 제주도 중산간 같은 풍경을 만나기도 했다.

생장에서 출발해서 산티아고까지 가는 775km의 카미노는 거리로 본다면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는 정도의 거리에 해당한다. 방금 지도를 보니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거리와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멀고 먼 길을 언제 다 걸어 도착할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걷고, 또 걷다보면 언젠가는 도착하는 길이 카미노다. 한참을 걷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고개를 들어 주변 풍경을 느끼고, 하늘 한 번 볼 여유가 없을 때도 있다. 아마 출발 후 수일은 아주 잘 단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카미노에 몸이 적응하는 기간이라 더욱 여유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몸이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면 몸이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걷는 것도 점점 익숙해진다. 적응 기간이 끝나면 가끔 고개를 들어 때로는 생경하고 또 때로는 익숙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두 눈에, 그리고 마음 속에 담는 여유를 가져보길 바란다. 많은 날어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지나온 길의 풍경이 아스라이 떠오른다면 카미노의 여운이 더욱 짙고 아름답지 않겠는가.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순례길, 시작과 끝 그리고 콤포스텔라

나는 지난 1월 26일 Saint-Jean-Pied-de-Port(이하 생장)을 출발하여 2월 24일 Santiago de Compostela(이하 산티아고)에 도착하기까지 30일 동안 775km의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이하 카미노)를 걸었다. 정확히는 프랑스길을 걸었다. 유럽 곳곳에서 출발하는 카미노는 산티아고를 향해 모여든다. 수많은 길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걷는다는 순례길이 프랑스길이다.

계절과 날씨에 대해서는 따로 얘기하기로 하겠다. 우선 카미노의(정확히는 프랑스길)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받게되는 콤포스텔라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한다.

보통 프랑스길이라고 하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생장에서 시작해서 산티아고에서 끝나는 길을 의미한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길이라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쉽게 여행안내서를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안내서에서 전체 일정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정보가 얼마나 최신의 것인지가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또 순례자 협회를 비롯해서 기사, 블로그 등을 통해서 프랑스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비수기인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카미노를 걷는 한국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유럽사람들을 제외하면 그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지난 겨울에는(이제는 봄이니까) 스페인을 제외하면 한국사람들이 가장 많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겨울에 한국사람들이 왜 많은지 물었지만, 나도 그 이유는 모른다.

내가 만났거나 전해들은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생장에서 일정을 시작한다. 대부분의 안내서에서도 생장에서 출발하는 일정을 소개한다. 생장에서 출발하여 프랑스길 전체를 걷는 데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보통 4주에서 5주 정도의 기간을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하게 된다. 나는 전체 코스를 30일(휴식 1일 포함)에 소화했으니 평균 정도에 해당한다. 걸음이 빠르고 체력이 좋은 사람들은 하루 40km 이상을 매일 걷는 사람들도 있다. 어찌되었든 전체 코스를 걷기 위해서 적어도 한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스페인까지 이동하는 시간, 그리고 돌아오는 시간까지 계산한다면 며칠의 여유가 더 필요하다. 한국사람 중에서 카미노를 위해서 한달 이상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텐데도 많은 사람이 이 길을 걷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대학생이라면 방학을 이용한다고 하지만 직장인의 경우에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카미노는 그 목적지가 산티아고라는 사실을 빼면 사실 아주 다양하다. 프랑스길을 걷는다고 해서 꼭 생장에서 시작해야할 이유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스나 레온에서 출발하곤 한다. 순례자 증명서인 콤포스텔라를 받기 위해서는 산티아고에서 적어도 1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순례를 시작해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리아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산티아고 가까워질수록 길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많아진다. 생장에서 출발하든, 사리아에서 출발하든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소에서 발급하는 콤포스텔라는 같다. 물론 3유로를 내고 걸었던 거리를 써주는 다른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지만 그건 개인의 선택이다. 그런데 카미노에서 만났거나, 전해들었던 한국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생장에서 출발한다. 멀리서 와서 길을 걷는데 시간에 쫓기는 경우도 보았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로 중간에 버스나 기차를 이용해서 이동하는 경우도 많았다. 개인의 선택일 뿐 버스나 기차를 타는 것이 문제될 건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일정이 그리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생장에서 출발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본다. 물론 전체 코스를 모두 걸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다. 자신의 일정을 고려해서 어디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 결정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또 무리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전체 코스를 걷기 위해서 무리를 하는 경우도 보았다. 젊은 패기로 도전한다면 말릴 이유는 없지만, 이 또한 추천하고싶진 않다. 내 몸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 아니다. 카미노를 걷고 탈이 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좋은 길을 걷고 건강을 해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는 평균적인 수준을 기준으로 할 때 순수하게 카미노를 걷는 데에 쓸 수 있는 시간이 30일 정도 된다면 생장에서 출발해서 전체 코스를 소화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3주 정도라면 부르고스, 2주라면 레온, 1주라면 사리아에서 출발할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콤포스텔라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또한 개인의 선택이다. 산티아고 5km 앞까지 걸어왔다가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 시내를 스쳐지나며 대성당을 향해서 손가락 욕을 날리고 돌아갔다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같이 걸었던 분들이 해주셨다. 콤포스텔라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면 카미노를 걸으며 길을 음미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카미노는 경주가 아니다. 빨리 산타아고에 들어간다고 특별한 것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속도에 맞게 안전하게 걷고 길 위에서 만나는 것을 느끼고 즐기는 여유가 카미노에서는 더 필요하다 생각한다.

생장에서 출발해서 775km를 걸었다고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카미노에서 그 정도 경험은 대단한 자랑거리가 아니란 점을 미리 알려둔다. 하루 하루 걸어 산티아고로 갈 수 있다면 감사한 것이고, 그렇게 걷고 있는 당신은 스스로 대견하게 여겨도 좋을 것이다. 그 길을 걸을 당신을 위해 Buen Camino!

2016. 5. 2.

바다에 기대 사는 사람들

"사실 동해바다랑 소나무들이 있어서 7번 국도가 아름답다고들 하지만요, 저런 어촌마을이 있고 그 안에 저렇게 사람 사는 모습들이 있어서 이 길이 더 좋은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이 길을 가다 만나는 마을들은 꼭 이름을 한번씩 불러줘야할 거 같아요. 안그러면 서운해 할 거 같아서. 병곡, 후포, 평해, 월송, 덕산...."

영화 '가을로' 속 대사다. 도시인의 눈으로 어촌마을의 생활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저 영화 속 장면 처럼 차를 타고 스쳐지나며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딱 그정도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름다운 동해를 끼고 앉은 마을은 영화 속 대사처럼 이름을 한번씩 불러줘야할 것 같을 만큼 아름답다.

부산 오륙도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와 나란히 길이 났다. 동해를 지키던 철책을 걷고 군인들이 투박한 군홧발로 밟던 길은 이제 여행자들의 몫이 되었다. 이름도 예쁜다. '해파랑길'이란 이름은 곱씹을 수록 참 잘 지은 이름이다 싶다. '바다와 파도의 길'이란 이름만큼 이 길을 잘 설명해줄 설명이 또 어디 있을까? 한편 '해'는 바다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지만 하늘에 떠 있는 '해'라도 해도 될 듯 하다. 바다를 따라 나란히 걷는 길은 아름다운 바다 풍경도 함께하지만 내리쬐는 해도 함께하는 길이니 말이다.

지난 목요일(4월 28일)부터 어제(5월 1일)까지 포항에서 출발해서 평해 월송정까지 바다를 따라 걸었다. 차를 타고 지나는 길에는 그저 스쳐지나는 풍경이 걷는 이에게는 좀 더 오랫동안 머문다. 그만큼 이런 저런 생각도 함께 지나간다. 도시인의 눈으로 보는 바닷가 마을의 생활은 일상에서 보는 것과는 영 다른 색다른 풍경 정도일 것이다. 며칠 걷는다고 내가 동해안 어느 마을에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달리 보이는 것도 있었다.

경북의 동해안은 해안과 나란하게 달리는 태백산맥에서 뻗어나온 산이 바닷에 딱 붙어 서있다. 강릉에서 북쪽이 해안이 긴 백사장이 어어진 모래 해안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바다를 마주하고 앉은 마을은 바로 뒤에 산을 두고 있다. 작은 어항을 끼고 있는 곳도 있고, 그렇지 못한 곳도 있다. 포항 쪽에는 그래도 마을 뒤로 농사지을 땅이 있었는데, 영덕 쪽은 농사지을 땅이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바다에 의지해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은 어항이라도 끼고 있는 마을은 어김없이 해신당이 있다. 얼마전에는 올해 풍어제도 지냈나 보다.

파도가 들이닥치는 바위 위에서 기다란 장대를 들고 미역을 건지는 이들과 그 미역을 정성스럽게 네모나게 널어 말리는 이들의 모습은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욕심을 낸다고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미역을 건질 수는 없을테지만 그래도 미역은 바다가 주는 선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격에 따라 잘 말린 미역은 스무 개씩 묶어 13~15만원 정도 받는다고 한다.

만선의 꿈도 좋고, 미역 말려 팔아 번 돈이 아무리 쏠쏠해도 바다를 마주하고 사는 것은 무서운 일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을마다 지진해일 대피로를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있고, 파도가 센 날은 파도가 방파제를 넘는 일이 없으란 법도 없다. 성난 파도도 멀리서 바라보면 그림 같을 수 있겠지만, 바다를 매일 마주하고 사는 사람들 눈에도 그렇게 보일까?